중국 일각서 전랑외교 자성론…강경일변 대외기조 조절할까

前주미대사 "스타되려 하지말라" 고언…학자 "살계경후 말라"
對서방 외교와 연결된 대만·홍콩 문제선 여전히 강경
중국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상징적 인물인 친강(秦剛) 주미대사는 지난달 20일 미국 언론 매체들과의 회견에서 전랑외교에 대한 견해를 질문받자 "우리는 선제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반격하는 것"이라며 "중국 외교관은 늑대가 아니라 늑대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이라고 답했다. 핵심이익, 중요 관심사 등으로 규정한 자국의 어젠다를 관철하기 위해 경제력으로 압박을 가하고, 외교 현안에서 원색적인 표현으로 타국을 비판하는 중국 외교에 붙은 별칭이 '전랑외교'다.

외교부 대변인 출신인 자신을 겨냥한 듯한 질문에 친 대사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미국 영화 제목(늑대와 춤을)을 차용해 받아친 것이었다.

친 대변인의 답변 자체는 별 의미를 두기 어려운 농담조였지만 중국 내 일각에서 전랑외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전 주미 중국대사는 지난달 20일 베이징(北京)에서 중국국제문제연구원(이하 연구원) 주최로 열린 '2021년 국제정세와 중국외교 토론회'에서 "원칙적으로 준비 안 된 싸움, 자신 없는 싸움, 오기로 하는 싸움과 소모전은 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의 무능과 태만으로 인해 인민의 이익에 손실을 입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의 상대 중에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양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이상과 신념, 과학적 이론, 넓은 마음, 고상한 정서를 가진 공산당 사람이기 때문에 실제 투쟁에서 그들을 이길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그들에게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터넷 스타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2013년 5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8년여 간 주미대사로 재임하며 미국의 3개 정권(오바마·트럼프·바이든)을 경험한 추이 전 대사 발언이었기에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랑외교라는 별명이 붙게 한 중국 일부 외교관들의 과격한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대미 외교 등 주요 외교 전선에서 강경 일변도를 지양하고 신중한 접근을 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읽혔다.

또 칭화(淸華)대 국제관계학과 다웨이(達巍) 교수는 지난 1일 펑파이(澎湃)와의 인터뷰에서 "총체적 원칙은 최대한 더 많은 친구를 얻는 것이고, 적수를 최대한 줄여 전선을 좁히는 것"이라며 "살계경후(殺鷄儆<개사슴록변에 候>)'의 심리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닭을 죽여 원숭이를 겁준다는 의미인 살계경후는 중국의 전랑외교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성어다.

그는 "국제관계의 게임에서 닭은 잡아 죽이기 어렵고 닭잡기는 원숭이를 겁먹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닭이 더 빨리 원숭이 쪽으로 가게 만든다"고 부연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응한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호주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기원 규명 촉구에 대응한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 등의 강경 외교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와 함께 새해 들어 중국 관영매체의 대미외교 관련 사설이나 칼럼, 중국 관변 연구기관 관계자의 칼럼 등을 보면 미국에 대해 이런저런 비난은 하되, 미중 협력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미국에 '일전불사'의 태도로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일례로 중앙당교 산하 국제전략연구원 원장인 가오주구이(高祖貴) 교수는 지난 3일 콘텐츠 플랫폼인 바이자하오(百家號)의 당교 계정에 올라온 글에서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변수라면서도 올해 미중 간에 다각적인 교류, 실질적인 협력 등이 복원될 가능성을 점쳤다.

이 같은 목소리가 중국 외교의 방향 전환 신호로 속단하긴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 통제가 갈수록 강화하는 최근 중국의 분위기에서 전랑외교에 대한 자성론과 같은 '이견'이 당국의 '묵인' 없이 공론의 장에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만약 중국 당국의 묵인하에 전랑외교 자성론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이라면 최근 중국이 직면한 외교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해 보인다.

전략적 경쟁상대인 미국과의 관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유럽연합(EU)과 인권 관련 제재 공방 속에 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CAI) 비준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 제재 카드로 사용한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이 중국의 전력난 속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일 등은 중국 전랑외교의 '역풍'으로 꼽힌다.

더욱이 그나마 유럽의 리더 역할을 하며 미중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 온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작년 연말 물러난 이후 중국은 독일의 '균형추' 역할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

또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한국 내 대 중국 정서의 급격한 악화를 유발함으로써 중국 외교에 잠재적 리스크가 되고 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중국 사회에서 강경 일변도의 보여주기식 외교, 자기만족형 외교는 실익도 없고 역효과만 크다는 자성론이 존재했는데 이번에 추이톈카이 전 대사가 처음 공론화한 모양새"라며 "추이 전 대사의 발언이 중국 정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인지 개인적 충정에 따른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의 전랑외교 자성론과는 별개로, 중국 정부는 서방과의 외교에 영향을 주는 대만, 홍콩 문제에서는 변함없이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주펑롄(朱鳳蓮) 중국 대만판공실 대변인이 4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입장문에서 홍콩 '입장신문' 폐간을 비판한 대만 집권당 민주진보당(민진당)을 향해 "홍콩 사무에 개입한 검은 손은 반드시 절단될 것"이라는 수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낸 것이 한 예다. 만약 중국이 일각의 자성론을 감안해 미국 등 서방을 향한 강경 톤을 조절하더라도 내치로 간주하는 홍콩, 대만 문제에서 강경책을 고수할 경우 서방과의 갈등은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