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투자'? '스톡데일 패러독스'! [여기는 논설실]

막연한 희망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
부자들 공통점은 '합리적 낙관주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대하라"
대전환기 맞닥뜨린 올해 더욱 절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돈 잘 버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 워런 버핏이 애플 투자로 1240억달러(148조원)를 번 것만 봐도 그렇다. 버핏이 360억달러를 주고 사들인 애플 지분 평가액은 6년 새 1600억달러로 불어났다. 애플 시가총액 3조달러 돌파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스톡데일 생존 비결-합리적 낙관주의

버핏은 한동안 비싼 기술주 투자를 꺼렸다. 전통적인 성장주 중심의 투자 성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 변화를 읽는 그의 눈은 남달랐다. 그 덕분에 오랜 관행을 버리고 투자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방향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그는 애플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우리 회사의 투자 중 과거 철도와 보험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큰 비즈니스가 애플”이라고 말했다. 특히 애플이 ‘밀착 제품(sticky product·고객정착률이 높은 제품)’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고 구체적인 투자 포인트를 잡아 실행에 나선 것이다.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도 투자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숙고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말했다. 그가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대하라>는 책에서 강조한 투자의 3대 덕목은 ‘절대 빚내서 투자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자기 결정을 믿고 지킬 수 있는 인내심을 가져라’다.

그러면서 “자기 돈을 가지고 우량주에 투자하라. 그리고 수면제를 먹고 한 몇 년간 푹 자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의 책 원제가 <돈에 대해 생각하는 기술(Die Kunst ueber Geld nachzudenken)>이었다. 이는 투자 경험이 많은 사람은 물론이고 초보 투자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이런 투자 지침과 맞아떨어지는 심리학 용어가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는 비관적인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고 장래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일컫는다.

낭만적인 낙관주의가 현실 문제를 간과하고 무조건 희망에 기대는 것이라면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현실을 냉철하게 보는 비관론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긍정적인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 용어의 주인공인 미국 해군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쟁 때 8년간 포로생활을 하며 온갖 위기를 넘긴 뒤 살아 돌아왔다. 다른 동료들은 ‘이번 크리스마스엔 풀려나겠지, 다음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엔 풀려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가 꿈이 좌절될 때마다 희망을 잃고 죽어갔다.스톡데일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저자인 짐 콜린스와의 인터뷰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되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 이는 경영과 투자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스톡데일의 추락-모르는 분야는 금물

현실을 냉정하게 본다는 것은 현상을 철저하게 파악한다는 얘기다. 투자에서도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금물이다. 스톡데일의 생환 이후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귀국 후 영웅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해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로스 페로의 러닝메이트로 영입됐다. 엉겁결에 정치 무대에 선 그는 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에 나가게 됐다. 초반 연설에서는 “나는 누구지? 왜 여기 있지?”라는 말로 박수갈채를 받았다.그러나 토론 과정에서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나 큰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부통령 후보라는 자리를 너무나 쉽게 생각한 그가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함정에 스스로 빠진 것이었다.

이처럼 투자를 할 때에는 자기가 잘 아는 분야를 택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자세까지 겸비한다면 일단 훌륭한 투자자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이런 사람은 감염병으로 무기력해진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성공의 문을 열 수 있다. 요즘 같은 널뛰기 장세에서는 합리적 낙관주의,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교훈을 더욱 되새겨 볼 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