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성장 공식 없지만 인적자본 투자는 확실한 밑거름
입력
수정
지면S11
(36) 경제성장경제 성장의 근본 메커니즘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수세대에 걸쳐 많은 경제학자가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노벨상을 받는 영예도 누렸지만, 그 누구도 부유한 나라에서 다시 성장이 이뤄질지,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미국의 성장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로버트 고든 교수나 그렇지 않다는 조엘 모키어 교수의 주장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다.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공식은 없다. 성장을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할 때 질적 발전의 마중물로 활용 가능.
성장을 둘러싼 상반된 의견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은 그의 책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를 통해 ‘미국의 성장은 1973년 10월 16일(혹은 그즈음)에 종말을 고했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총요소생산성’의 성장 둔화였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성장은 ‘노동생산성의 증가’와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기계 즉, ‘자본의 질적 개선’, 그리고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 증가 외에 성장에 기여하는 ‘총요소생산성’에 의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지난해와 동일한 교육 수준의 노동자가 같은 기계를 활용해 지난해보다 많은 시간당 산출량을 기록했다면 이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와 그 직전 몇십 년간 이뤄진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는 엄청났다. 1920~1970년의 총요소생산성 증가 속도는 1890~1920년에 비해 네 배가 빨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1973년을 기점으로 멈췄다. 이후 25년간 총요소생산성의 성장 속도는 1920~1970년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2018년의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은 0.94%로, 이는 1920~1970년의 연평균 1.89%보다 낮은 수준이었다.낙관적인 전망도 존재한다. 조엘 모키어 교수는 과학기술을 선도하려는 국가 간의 경쟁이 혁신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세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새롭게 등장한 혁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혁신이 현재 수준으로는 예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기술 혁신으로 인해 뇌의 노화 속도가 둔화하면 일생 중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는 기하급수적인 성장의 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총량 단위의 문제
문제는 모두가 옳고, 모두가 틀렸다는 점이다. 이들의 근거는 하나같이 옳다. 로버트 고든이 제시한 근거도, 조엘 모키어가 그리는 밝은 미래의 근거도 모두 옳다. 많은 경제학자의 성장이론도 옳다. 1인당 소득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이 정체된다는 로버트 솔로의 설명도 옳고, 실리콘밸리와 같은 공간에서 지식의 교차수분으로 아이디어가 축적되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무더기로 나온다는 경제학자 폴 로머의 의견도 옳다.하지만 틀린 점은 이들 모두 경제 전체를 단위로 하는 ‘총량’ 개념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합쳐지는 총량 단위에서는 많은 개념이 추상화된다. 총량 단위의 문제는 실제로 자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놓치게 된다는 점에 있다. 현실에서 같은 전략도 상황이 다르면 동일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성장 전략이 중국과 미국에서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리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한 정책이 다른 국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리라는 보장 또한 당연히 없다. 확연하게 다른 정치적, 문화적 토대는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의 크기도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