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낳은 詩 '미라보 다리'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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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에 얽힌 문화사의 이면
절도범으로 몰린 아폴리네르
절친 화가 피카소와 공범 누명
1주일 구금됐다 풀려났지만
사랑하는 여인과 아픈 이별
함께 걷던 다리에서 추억 잠겨
2년 뒤 붙잡힌 범인은 유리공
고두현 논설위원

당시 보안은 허술했다. 루브르에 전시된 그림을 수시로 떼어내 사진으로 찍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진사들은 언제든지 작품에 접근할 수 있었다. 경비원들도 ‘사진 찍으러 갖고 가나 보다’ 했다.도난 사실을 알게 된 파리 경시청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당장 박물관을 폐관하고 국경도 봉쇄했다. 그사이에 박물관 비상계단 한구석에 버려진 액자 두 개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림의 행방은 묘연했다. 범인도 오리무중이었다.
8일 뒤 한 신문이 “루브르에서 훔친 조각상을 우리 신문사에 가져온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이 이냐스 도르므상 남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소설의 주인공 이름과 같았다. 아폴리네르는 곧 모나리자 절도 용의자로 체포됐다.

그때가 1907년이었으니 아폴리네르가 27세, 로랑생이 24세 때였다.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고 사생아라는 공통점까지 지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아폴리네르는 이탈리아 퇴역 장교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 어머니의 비밀 연애 끝에 태어났고, 로랑생은 귀족 출신 아버지와 하녀 사이에서 출생했다.
닮은 점이 많은 이들은 곧 환상의 커플이 됐다. 앙리 루소의 그림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루소는 이 그림에서 ‘시의 여신’인 로랑생과 그녀에게 영감을 받는 아폴리네르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렸다.그런데 아폴리네르가 모나리자 절도범으로 몰리자 로랑생은 크게 실망했고, 결국은 관계가 틀어지게 됐다. 아폴리네르는 생미셸 광장 옆의 옥탑방에 있는 친구 샤갈을 찾아가 신세 한탄을 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해가 뜰 무렵 집에 가려고 길을 나선 그는 미라보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집은 미라보 다리에서 가까운 센 강 서쪽(파리 16구)의 그로 거리에 있었다. 지금의 ‘라디오 프랑스’ 건물 부근이다. 연인 로랑생이 그 근처에 살았다. 오랫동안 이 다리를 함께 건너며 사랑을 나눴던 그녀가 지금 곁에 없다니! 햇살을 받은 센 강의 물결은 눈부셨지만, 도둑으로 오인받고 사랑까지 잃은 그는 한없이 쓸쓸했다. 그 가슴 아픈 이별의 회한을 시로 쓴 것이 곧 ‘미라보 다리’다.
이별 후 그는 ‘미라보 다리’를 포함한 첫 시집 《알코올》을 발표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로랑생도 개인전을 열면서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인정받게 됐다. 예상치 못한 아픔을 겪고 난 뒤 서로의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이다.도난당한 ‘모나리자’는 어떻게 됐을까. 2년 뒤인 1913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화랑에 도착한 편지를 계기로 진범이 잡혔다. 범인은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였다. 그는 ‘모나리자’를 훔치기 1년 전 그림 주위에 투명 벽을 설치한 유리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