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Fed의 급진적 출구전략…글로벌 증시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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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퍼링 언급 이후새해 들어 미국 국채 금리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증시뿐만 아니라 외환시장,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빅테크 종목의 주가 폭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 1.75%를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도 빅 피겨(big figure)를 넘어 1200원대에 진입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4만달러 선 붕괴 일보 직전에 몰리고 있다.
6개월 만에
유동성 공급 종료
금리인상까지 예고
Fed, 하반기 이후
물가안정 낙관하지만
증시 불확실성은 확대
가장 큰 요인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출구전략 우려다. 작년 12월 Fed 의사록을 되짚어보면 매달 300억달러씩 자산 매입을 축소해 테이퍼링을 조기에 종료하고, 기준금리 인상을 곧바로 연계시키겠다는 것이 양대 로드맵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시중 유동성을 줄여나가는 대차대조표(B/S) 축소 방안이다.월가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추진됐던 출구전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진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출구전략은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이후 종료까지 1년 10개월, 첫 금리 인상까지 3년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테이퍼링이 처음 언급된 작년 9월 이후 6개월 만에 유동성 공급 종료와 축소, 그리고 금리 인상까지 한꺼번에 가져가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은 작년 9월 회의 직전까지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던 Fed가 왜 이렇게 서둘러 출구전략을 추진하느냐 하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출구전략 추진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9년 전 출구전략은 금융위기를 야기한 시스템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둔 반면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작년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을 계기로 시작된 인플레 쇼크는 ‘일시적이냐’는 논쟁을 뛰어넘어 동일한 통화정책 시차(9개월) 내에 하이퍼 인플레, 슬로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등이 모두 거론되는 ‘다중 복합 공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뉴노멀 현상인 이런 부류의 인플레는 총수요와 총공급 요인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때 나타난다.
통계기법상 요인 분석을 통해 악순환 고리의 인과관계를 규명해 보면 공급망 붕괴, 노동 수급 간 불일치 등에 따른 총공급 측 요인이 출발점으로 추정된다. 인플레 쇼크 이후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보다 높고 PPI가 CPI에 전가돼 줄어든 실질소득을 임금 상승 등을 통해 보전하는 과정에서 PPI가 더 높아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PPI가 높아지는 데 Fed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공급망 분야의 석학인 요시 셰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에 따르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소비가 증가할 경우 소매, 유통, 제조, 원자재 순으로 공급망이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수급 간 불균형이 증폭되는 이른바 ‘채찍 효과(bullwhip effect)’로 PPI가 급등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CPI에 전가된다.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하루 100개의 라면을 팔고 5일분(500개)의 재고를 가져가는 소매상이 Fed의 금융완화, 각종 정부 지원금 등과 같은 코로나 대책으로 하루 판매량이 200개로 늘었다면 재고분 1000개를 맞추기 위해 800개를 더 주문해야 한다. 이때 하루 100개에서 800개로 주문이 늘어난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 생산을 늘려줄 것을 독려하고 제조업체는 식자재 업체에 추가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수급 불균형이 증폭돼 결국은 공급망이 붕괴된다는 것이 채찍 효과의 골자다.
채찍 효과가 총수요와 총공급 요인 간 악순환 고리의 주범이라면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역(逆)채찍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출구전략을 빠르고 강하게 가져가면 된다. ‘일시적’이라는 인플레 진단이 틀렸다고 강한 비판을 받고 있는 Fed가 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도 이 같은 근거에서다.
문제는 급진적인 출구전략을 추진할 경우 우려되는 ‘제2 에클스 실수’ 가능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는 시스템 위기가 아닌 만큼 재봉쇄만 되지 않으면 성장 기반은 크게 훼손당하지 않는다. 미국 와튼스쿨 제러미 시겔 교수의 전망처럼 올해도 주식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보는 ‘TINA(There is no alternative)’를 주목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