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 계단청소봇·아마존 똑똑한 냉장고…판 커진 '스마트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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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2022 - 글로벌 퓨처테크 현장을 가다가포르국립대에서 1.5㎞ 떨어진 곳에 있는 다이슨 싱가포르테크놀로지센터(STC). 다이슨의 ‘제2의 심장’으로 불린다. 영국의 다이슨기술공과대학과 함께 10년 뒤 스마트홈을 구현할 미래 가전의 모든 것을 연구한다. 2017년 3억3000만파운드(약 5303억원)를 들여 완공한 STC에선 계단을 오르내리는 청소로봇 등 차세대 가전제품 개발이 한창이다.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1993년), 날개 없는 선풍기(2009년), 속이 뚫린 헤어드라이기(2016년)에 이은 또 하나의 혁신 예고편이다. 존 처칠 다이슨 무선청소기사업부 부사장은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모터 기술, 머신러닝 등 미래 기술 투자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8) '미래 가전 전초기지' 다이슨 STC
英 다이슨대학-싱가포르 연구소
실시간 협력…24시간 연구개발
아마존, 월풀과 손잡고 시장 진출
'GE 가전부문' 인수한 中 하이얼
기업명 바꾸며 '스마트홈'에 총력
미래가전 둘러싼 '기술 경쟁' 격화
"韓 1위 지키려면 가전대학 검토를"
“640조원 스마트홈 시장을 잡아라”
미래 가전 시장은 경계가 사라진 ‘빅블러 시대’의 격전장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LG전자 월풀 다이슨 등 전통적인 가전 제조사뿐만 아니라 구글 아마존 메타(옛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플랫폼도 잇따라 뛰어들고 있어서다. 코로나19는 스마트홈 시장 팽창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실감나게 구현하는 홀로그램 기술이 가전 제품에 적용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독일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480억달러(약 532조원)로 추산되는 세계 가전시장은 2024년 5386억달러(약 64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기자동차의 확산도 미래 가전의 중요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너럴모터스(GM) 등 자동차 제조사들이 가전의 영역으로 기술을 확장하려고 하는 이유다.글로벌 가전업체들은 치열한 ‘테크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이슨이 대표적이다. 처칠 부사장은 “청소봇은 AI와 로보틱스, 모빌리티 기술을 총합한 제품”이라며 “STC는 미래 가전기술이 태동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정익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다이슨의 기술 혁신·육성 방식은 글로벌 가전시장을 통틀어 가장 체계적”이라고 평가했다. 다이슨 STC에는 650여 명의 기술 엔지니어들이 24시간 내내 세상에 없는 가전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LG전자에 세계 1위 자리(가전 매출 기준)를 내준 월풀은 아마존과의 제휴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아마존은 2014년 AI 스피커인 ‘아마존 에코’를 내놓으며 스마트홈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6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부문을 인수한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 역시 스마트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엔 기업명을 ‘칭다오하이얼’에서 ‘하이얼스마트홈’으로 바꿨다. 독일 가전업체 보쉬의 탄야 튀케르트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올해 초 “AI와 IoT 기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며 “새로운 사업 모델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인력 양성 토대 척박한 韓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맹주다. 지난해 1~3분기 글로벌 가전시장 매출 1위는 LG전자가 차지했다. LG전자는 이 기간 20조5692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통 강자’ 미국 월풀(18조2900억원)을 앞섰다. 하지만 1등 자리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하 교수는 “다이슨은 2017년 STC와 함께 영국 노퍽주에 다이슨기술공과대학을 설립해 기술 인력 체계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STC는 싱가포르국립대 근처에 있어 이공계 핵심 인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영국 다이슨기술공대 학생들은 주 3일 다이슨연구소와의 신기술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하 교수는 “미래를 내다보는 인재 투자로 가전 시장의 패권을 쥐겠다는 것”이라며 “인력난에 시달리는 한국 가전업계 상황과 비교된다”고 아쉬워했다.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지난해 10월 ‘차기 정부에 바라는 산업기술 혁신정책’ 보고서에서 “다이슨대학 같은 기업 부설대학을 국내에도 허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다이슨처럼 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인력을 키우도록 해달라는 얘기다.
정지은 기자
■ 특별취재팀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취재팀장) 김현석 뉴욕·황정수 실리콘밸리 특파원 박동휘 생활경제부 차장, 강경민 산업부 임현우 금융부, 이지훈 경제부 박재원 증권부, 구민기 IT과학부 김리안 국제부, 차준호 마켓인사이트부 정지은·최한종 지식사회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