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자원 부국' 카자흐의 눈물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다. 국토 면적(272만5000㎢)이 한반도의 12배에 이른다. 내륙 국가 중 최대 규모다. 일부 영토는 아시아를 넘어 동유럽까지 뻗어 있다. 이 넓은 땅에 약 1900만 명이 산다. 한때는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농업국이었다. 그러다 자원 개발에 눈을 뜨면서 농업 분야는 국내총생산(GDP)의 4% 선으로 줄었다.

국부(國富)의 대부분은 천연자원에서 나온다. 원소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원소 105종 중 99종이 이 나라에 묻혀 있다. 전 세계 우라늄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자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이기도 하다. 수출의 90% 이상을 이들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이런 ‘자원 부국’에서 차량용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때문에 대규모 유혈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가 LPG 가격상한제를 폐지하면서 연료값이 두 배 이상 치솟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결국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러시아 특수부대까지 동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부패와 양극화’를 꼽는다. 소련 공산당 서기 출신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29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권력을 독점한 소수층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권부 실세인 162명이 국가 전체 부의 55%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연료값 급등은 시위의 방아쇠였고, “노인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확산될 만했다.

카자흐스탄 사태는 글로벌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우라늄과 원유값이 치솟는 등 국제 원자재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인터넷 접속 차단으로 비트코인 가격까지 출렁거렸다. 이 때문에 코로나 사태와 함께 또 다른 ‘블랙스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대두되고 있다. 블랙스완은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 엄청난 충격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여기에다 러시아의 특수부대 투입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커졌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와 미·서구권 간의 격전지로 떠오르자 국제 정세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할 카드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한 나라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는 현상은 얼마든 되풀이될 수 있다.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세상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