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은 왜 1조가 아니라 8억 과징금만 냈나[이지훈의 집중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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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해 부당이익을 몰아줬는지 여부를 다툰 ‘SK실트론 사건’은 작년 연말 많은 이들의 이목을 공정거래위원회로 집중시켰다. 공정위가 재벌기업이 오너에게 ‘사업기회 유용’을 근거로 제재한 첫 번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 회장이 검찰 고발을 당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재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정위와 SK의 치열했던 법리공방에 비해서 결론은 싱거웠다는 평가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에 기재했던 최 회장 혐의를 대부분 인용하면서도, 검찰 고발이 아닌 시정명령과 8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SK그룹은 이같은 공정위 제재 “사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SK의 완승’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공정위는 왜 이같은 비아냥을 감수하면서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수 밖에 없었을까. 아니면 공정위의 위법 판단의 논거 자체가 빈약했던 것이었을까. 이번 공정위와 SK의 충돌은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 취득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숱한 논쟁거리를 남겼다. 향후 ‘사업기회 유용’ 판단의 기준점이 될 이번 SK실트론 사건의 의미와 쟁점을 재점검했다.
우선 SK그룹의 지주사인 SK와 최 회장이 실트론 지분을 취득한 과정을 살펴보자. SK는 2017년 1월 반도체 소재업체인 LG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SK는 KTB PE(19.6%)와 우리은행 등 채권단(29.4%)이 보유한 실트론 잔여지분 인수를 검토했다. SK는 우선 그해 4월 KTB PE가 보유한 지분을 추가 확보해 지분율을 70.6%로 끌어올렸다.공정위는 이 무렵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실트론 잔여지분 인수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SK가 이사회도 열지 않고 최 회장이 잔여지분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판단했다. SK가 실트론 주식 29.4%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최 회장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당시 최 회장이 실트론 투자를 고민하던 무렵 SK내부에선 ‘찬성파’와 ‘반대파’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론은 찬성파의 승리였다.
SK하이닉스를 인수해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뛰어든 SK는 웨이퍼 업체 실트론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판단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정위가 공개한 SK내부 문건을 보면 실트론의 기업가치가 인수당시 1조1000억원에서 2020년 3조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2018년 이후 실트론의 순이익은 2000억원을 상회하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20배를 적용한 실트론의 기업가치는 치소 4조원에 이를 것이란 게 시장의 평가다.
이 밸류를 적용하면 최 회장의 지분가치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공정위 내부 계산한 최 회장의 지분취득 이익은 이것보다 낮다. 공정위는 상증세법에 따라 최 회장 주식가치가 2017년 대비 2020년말 기준 1967억원 상승한 것으로 계산했다. 이에 공정위는 SK내부 보고서 등을 근거로 “추가적 이익 상승을 미리 예상했다”고 판단했다. 2016년 실트론에 투자하면 추후 반드시 돈을 벌 수 있다고 SK와 최 회장이 확신을 했다는 게 공정위의 결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반도체·웨이퍼 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그만큼 불확실성 또한 존재했다며 공정위에 맞섰다. 그 근거로 2018~2019년 반도체 산업 하락 국면에서 일본 섬코, 독일 실트로닉 등 대표적 웨이퍼 업체들의 주가는 50%이상 폭락했다는 점을 들었다. SK관계자는 “실트론은 글로벌 5위 업체에 불과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서 회사 가치를 키운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존재를 고려할 때 실트론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라는 공정위의 주장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부분이다.
이 거래는 방산에 방점이 찍힌 딜이었다. 삼성이 방산사업을 포기하자, 한화가 그룹의 모태인 방산사업을 키우기로 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합의였기 때문이다. 반면 이 빅딜을 할 당시 종합화학은 골칫거리였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솔직히 선견지명을 가지고 종합화학을 인수한 것은 아니다”며 “삼성이 테크윈과의 패키지 매각을 원해서 한화는 당시 종합화학을 울며 겨자먹기 인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합화학은 테크윈 인수의 부산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변화는 당시 업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한화종합화학이 연간 매출 1조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작년 한화는 삼성이 보유한 한화종합화학 지분 24.1%(삼성물산 20.05%·삼성SDI 4.05%)를 1조원에 사들여 삼성-한화 빅딜을 최종 마무리했는데, 이는 옛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를 1조원 샀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같은 회사 지분 24.1%를 6년 뒤에 같은 돈(1조원)을 주고 사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화가 경영을 맡은 뒤 화학업황이 개선되면서 한화종합화학의 실적이 고공행진을 한 영향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SK실트론에 적용한 공정위의 ‘사업기회 유용’ 논리를 역으로 이 케이스에 적용할 경우 알짜회사를 헐값에 넘긴 삼성은 배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다소 당황스러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삼성종합화학이 이렇게 잘 될 것을 ‘알고도’ 사업기회를 포기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SK의 과거 사례도 살펴보자. SK는 2003년께 영국 최대 에너지 기업 BP(The British Petroleum)와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BP가 주도한 인구네시아 탕구 가스전을 통해 2006년부터 20년간 광양LNG터미널에 연간 60만t을 수입키로 한 것이다. 당시 가스전의 일부 물량이 판매되지 않자, SK가 당시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곧이어 LNG 가격이 급락하면서 SK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LNG가격은 반등했고, 탕구 가스전은 SK E&S의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알짜 자산이 됐다. 나중에 SK의 승소로 끝났지만, 관세청이 너무 낮은 가격에 LNG를 들여오면서 내야 할 세금을 안냈다며 무려 156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기업가치가 오르거나 내릴 것이란 사실을 ‘사전에 알았느냐’가 사업기회 유용을 판단하는 핵심 변수인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 한화, SK 모두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한 대기업 임원은 “당시 SK실트론이 잘 될지 안 될지는 누가 판단할 수 있었겠냐”며 “지금 와서 보니 잘됐기 때문에 부당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결과론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물론 SK가 실트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성공을 확신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이는 위법성을 입증하기 대단히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TRS는 실제 주식투자 없이 그 차액만 결제하는 장외파생거래 상품이다. 총수익매도자(증권사)가 기초자산(SK실트론 지분)에서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 등 모든 현금흐름을 총수익매수자(차입자,최태원 회장)에게 이전하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구조다. 주식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개인에게 대출해주는 결과와 사실상 동일하다.
TRS거래 자체는 합법이다. 기업도 TRS거래를 자금조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TRS거래의 위법성 여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두가지 관점에서다. 첫째는 TRS를 통해 자금을 수혈한 기업에서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로 의심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점이다. 공정위가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 조사해보면, 자금흐름의 시작 지점에 대부분 TRS거래가 나왔다는 것이다.
또 최 회장의 경우처럼 TRS를 개인이 활용한 경우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발행어음을 통한 개인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당국은 실트론 사례의 경우 TRS가 거래의 실질주체인 최 회장을 위한 사실상 개인대출로 활용됐다고 봤다. 물론 한국투자증권과 SK측은 개인대출이 아니라 SPC을 거친 만큼 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공방은 2019년 금융위가 한국투자증권에 부당대출 혐의로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한 금융전문가는 “TRS거래의 위법성 소지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인인 최 회장에게 매출액이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위반금액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이번에 공정위는 최 회장에게 정액과징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었다. 정액과징금의 최고 한도는 20억원이다. 이 탓에 최 회장은 정액과징금 부과대상에 속해 8억원의 과징금만 내게 됐다. SK에게 부과된 8억원을 합치면 총 16억원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제도적 허점’이라고 시인했다. 이번에 법 적용을 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과징금 규정의 빈틈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제재 대상이 개인일 경우 매출을 기준으로 한 과징금 고시 기준은 무용지물이다. 공정위는 향후 과징금 규정을 현실에 맞게 고치겠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SK는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 여부다. 최악의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낮고, 과징금도 20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사전 검토했을 가능성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 관계자는 “만약 검토를 안 했다면 SK법무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전원회의 이후 위원들 간에 ‘만장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한 명만 반대해도 무혐의 결론이 나기 때문에, 혐의는 모두 적용하돼 검찰 고발은 하지 않는 선에서 절충안을 찾았다는 게 공정위 안팎의 시각이다.이렇게 숱한 논쟁거리를 낳은 특수관계인의 회사 지분투자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회사기회유용 적용 첫 사건은 일단락 됐다. 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명분을 챙기고, SK는 실익을 챙기는 제재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하지만 사업기회유용 혐의 적용은 향후 또 다른 쟁점에서도 사안별로 치열한 법리공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공정위와 SK의 치열했던 법리공방에 비해서 결론은 싱거웠다는 평가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에 기재했던 최 회장 혐의를 대부분 인용하면서도, 검찰 고발이 아닌 시정명령과 8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SK그룹은 이같은 공정위 제재 “사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SK의 완승’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공정위는 왜 이같은 비아냥을 감수하면서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수 밖에 없었을까. 아니면 공정위의 위법 판단의 논거 자체가 빈약했던 것이었을까. 이번 공정위와 SK의 충돌은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 취득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숱한 논쟁거리를 남겼다. 향후 ‘사업기회 유용’ 판단의 기준점이 될 이번 SK실트론 사건의 의미와 쟁점을 재점검했다.
◆최태원 회장 지분가치는 1조?
최 회장은 지난달 15일 시작해 밤 늦게까지 이어진 공정위 전원회의에 직접 참석해 혐의점 소명에 최선을 다했다. 최 회장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자 공정위 직원들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SK 참모진들이 역효과를 고려해 만류했지만, 직접 출석하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이날 공정위와 SK, 그리고 최 회장은 어떤 쟁점을 놓고 밤 늦게까지 공방을 이었갔던 것일까.우선 SK그룹의 지주사인 SK와 최 회장이 실트론 지분을 취득한 과정을 살펴보자. SK는 2017년 1월 반도체 소재업체인 LG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SK는 KTB PE(19.6%)와 우리은행 등 채권단(29.4%)이 보유한 실트론 잔여지분 인수를 검토했다. SK는 우선 그해 4월 KTB PE가 보유한 지분을 추가 확보해 지분율을 70.6%로 끌어올렸다.공정위는 이 무렵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실트론 잔여지분 인수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SK가 이사회도 열지 않고 최 회장이 잔여지분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판단했다. SK가 실트론 주식 29.4%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최 회장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당시 최 회장이 실트론 투자를 고민하던 무렵 SK내부에선 ‘찬성파’와 ‘반대파’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론은 찬성파의 승리였다.
SK하이닉스를 인수해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뛰어든 SK는 웨이퍼 업체 실트론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판단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정위가 공개한 SK내부 문건을 보면 실트론의 기업가치가 인수당시 1조1000억원에서 2020년 3조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2018년 이후 실트론의 순이익은 2000억원을 상회하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20배를 적용한 실트론의 기업가치는 치소 4조원에 이를 것이란 게 시장의 평가다.
이 밸류를 적용하면 최 회장의 지분가치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공정위 내부 계산한 최 회장의 지분취득 이익은 이것보다 낮다. 공정위는 상증세법에 따라 최 회장 주식가치가 2017년 대비 2020년말 기준 1967억원 상승한 것으로 계산했다. 이에 공정위는 SK내부 보고서 등을 근거로 “추가적 이익 상승을 미리 예상했다”고 판단했다. 2016년 실트론에 투자하면 추후 반드시 돈을 벌 수 있다고 SK와 최 회장이 확신을 했다는 게 공정위의 결론이었던 셈이다.
◆SK, “투자는 리스크를 동반하는 일”
SK는 이번 법리공방 때 무려 4개의 로펌을 고용해 조목조목 공정위의 주장을 반박했다. 공정위가 위법성을 주장한 모든 사안에서 양측이 부딪혔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명확했다. 바로 2017년 최 회장이 SK실트론 지분 29.4%를 인수한 것이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사업기회 유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사회기회 유용이 성립하기 위해선 공정위의 주장처럼 실트론의 지분가치가 상승할 것을 SK와 최 회장이 미리 알았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SK가 확보할 수 있는 미래이익을 최 회장에게 일부러 몰아줬다는 공정위의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SK는 모든 투자행위는 성공과 실패를 속단할 수 없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적극 항변했다. 지금까지 사업기회는 일정 수익이 보장된 물류나 브랜드 사용의 사업기회를 특수관계인에게 제공하는 ‘구체적 실체가 있는 사업 수행’을 전제로 보아왔다는 것이다. SK측은 실트론의 경우 지분 보유만으로 ‘상당한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회사의 가치는 수시로 변하고, 지분 투자가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반도체·웨이퍼 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그만큼 불확실성 또한 존재했다며 공정위에 맞섰다. 그 근거로 2018~2019년 반도체 산업 하락 국면에서 일본 섬코, 독일 실트로닉 등 대표적 웨이퍼 업체들의 주가는 50%이상 폭락했다는 점을 들었다. SK관계자는 “실트론은 글로벌 5위 업체에 불과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서 회사 가치를 키운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존재를 고려할 때 실트론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라는 공정위의 주장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부분이다.
◆종합화학 판 삼성은 배임인가?
“비즈니스의 성공여부를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만약 모든 기업이 계획대로 사업을 성공시킨다면,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가 한국에도 몇 개는 더 있어야겠죠.” 한 대기업 대표가 이번 ‘SK실트론 사건’에 대한 관전평을 전하면서 한 말이다. 기업 관계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세기의 빅딜로 불렸던 삼성과 한화의 M&A사례를 따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14년 삼성그룹은 방산사업(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과 화학사업(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넘기는데 합의한다. 방위산업체 삼성테크윈의 지분 32.4%를 8400억원에,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를 1조600억원에 한화에 매각한 것이다.이 거래는 방산에 방점이 찍힌 딜이었다. 삼성이 방산사업을 포기하자, 한화가 그룹의 모태인 방산사업을 키우기로 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합의였기 때문이다. 반면 이 빅딜을 할 당시 종합화학은 골칫거리였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솔직히 선견지명을 가지고 종합화학을 인수한 것은 아니다”며 “삼성이 테크윈과의 패키지 매각을 원해서 한화는 당시 종합화학을 울며 겨자먹기 인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합화학은 테크윈 인수의 부산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변화는 당시 업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한화종합화학이 연간 매출 1조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작년 한화는 삼성이 보유한 한화종합화학 지분 24.1%(삼성물산 20.05%·삼성SDI 4.05%)를 1조원에 사들여 삼성-한화 빅딜을 최종 마무리했는데, 이는 옛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를 1조원 샀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같은 회사 지분 24.1%를 6년 뒤에 같은 돈(1조원)을 주고 사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화가 경영을 맡은 뒤 화학업황이 개선되면서 한화종합화학의 실적이 고공행진을 한 영향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SK실트론에 적용한 공정위의 ‘사업기회 유용’ 논리를 역으로 이 케이스에 적용할 경우 알짜회사를 헐값에 넘긴 삼성은 배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다소 당황스러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삼성종합화학이 이렇게 잘 될 것을 ‘알고도’ 사업기회를 포기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SK의 과거 사례도 살펴보자. SK는 2003년께 영국 최대 에너지 기업 BP(The British Petroleum)와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BP가 주도한 인구네시아 탕구 가스전을 통해 2006년부터 20년간 광양LNG터미널에 연간 60만t을 수입키로 한 것이다. 당시 가스전의 일부 물량이 판매되지 않자, SK가 당시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곧이어 LNG 가격이 급락하면서 SK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후 LNG가격은 반등했고, 탕구 가스전은 SK E&S의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알짜 자산이 됐다. 나중에 SK의 승소로 끝났지만, 관세청이 너무 낮은 가격에 LNG를 들여오면서 내야 할 세금을 안냈다며 무려 1560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기업가치가 오르거나 내릴 것이란 사실을 ‘사전에 알았느냐’가 사업기회 유용을 판단하는 핵심 변수인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 한화, SK 모두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한 대기업 임원은 “당시 SK실트론이 잘 될지 안 될지는 누가 판단할 수 있었겠냐”며 “지금 와서 보니 잘됐기 때문에 부당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결과론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물론 SK가 실트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수준에서 성공을 확신했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이는 위법성을 입증하기 대단히 까다로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TRS거래는 여전한 쟁점
이번 사건은 TRS거래에 대한 관심을 또 한번 불러일으켰다. 최 회장은 실트론 지분 29.4%인수에 동원된 자금을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한 후 이 SPC에 증권사가 자금을 대출토록 해 확보했다. 이른바 총수익스와프(TRS, Total Return Swap) 거래다. 또 이 과정에서 SK는 TRS거래를 주선한 한국투자증권 측에 “향후 SK그룹과의 딜을 고려해서 수수료율 낮출 수 있을 만큼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그 결과 최 회장의 TRS수수료율은 기존 4.54%에서 3.8%까지 낮아졌다.TRS는 실제 주식투자 없이 그 차액만 결제하는 장외파생거래 상품이다. 총수익매도자(증권사)가 기초자산(SK실트론 지분)에서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 등 모든 현금흐름을 총수익매수자(차입자,최태원 회장)에게 이전하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구조다. 주식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개인에게 대출해주는 결과와 사실상 동일하다.
TRS거래 자체는 합법이다. 기업도 TRS거래를 자금조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TRS거래의 위법성 여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두가지 관점에서다. 첫째는 TRS를 통해 자금을 수혈한 기업에서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로 의심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점이다. 공정위가 대기업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 조사해보면, 자금흐름의 시작 지점에 대부분 TRS거래가 나왔다는 것이다.
또 최 회장의 경우처럼 TRS를 개인이 활용한 경우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발행어음을 통한 개인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당국은 실트론 사례의 경우 TRS가 거래의 실질주체인 최 회장을 위한 사실상 개인대출로 활용됐다고 봤다. 물론 한국투자증권과 SK측은 개인대출이 아니라 SPC을 거친 만큼 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공방은 2019년 금융위가 한국투자증권에 부당대출 혐의로 과태료 5000만원을 부과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한 금융전문가는 “TRS거래의 위법성 소지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과징금 규정은 실수, 고치겠다”
현행법상 중대범죄의 경우 범죄수익을 모두 환수할 수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의 경우 중대범죄에 해당하지 않고, 공정거래법 47조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을 적용 받았다. 공정위의 과징금 규정은 자연인인 특수관계인이 사업기회를 제공받더라도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위반금액'’ 정할 때 ‘관련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도록 돼 있다.자연인인 최 회장에게 매출액이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위반금액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이번에 공정위는 최 회장에게 정액과징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었다. 정액과징금의 최고 한도는 20억원이다. 이 탓에 최 회장은 정액과징금 부과대상에 속해 8억원의 과징금만 내게 됐다. SK에게 부과된 8억원을 합치면 총 16억원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제도적 허점’이라고 시인했다. 이번에 법 적용을 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과징금 규정의 빈틈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제재 대상이 개인일 경우 매출을 기준으로 한 과징금 고시 기준은 무용지물이다. 공정위는 향후 과징금 규정을 현실에 맞게 고치겠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SK는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 여부다. 최악의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낮고, 과징금도 20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사전 검토했을 가능성이다. 이에 대해 대기업 관계자는 “만약 검토를 안 했다면 SK법무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절충안 찾은 공정위?
이번에 최 회장에 대한 공정위의 검찰 고발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는 전원회의 제도도 한 몫 했다. 전원회의는 9명의 위원 중 5명의 위원 이상의 찬성해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9명 위원 중 무려 4명이 불참, 최소 정족수인 5명만 참여한 가운데 이뤄졌다. 이 떄문에 단 한 명의 위원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면 무혐의로 끝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사건의 중요도에 비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4명의 위원이 빠진 것은 상임위원 중 2명(김성삼·정진욱 위원)이 SK실트론 사건을 다뤘던 기업집단국장을 지냈고, 비상임위원 4명 중 판사 출신 법조인 2명(김동아·서정 위원)이 각각 소속 법무법인이 SK사건을 대리했다는 이유와 SK관련 연구용역을 수임한 경력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이번 전원회의 심의에서 빠졌기 때문이다.이번 사건은 전원회의 이후 위원들 간에 ‘만장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한 명만 반대해도 무혐의 결론이 나기 때문에, 혐의는 모두 적용하돼 검찰 고발은 하지 않는 선에서 절충안을 찾았다는 게 공정위 안팎의 시각이다.이렇게 숱한 논쟁거리를 낳은 특수관계인의 회사 지분투자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회사기회유용 적용 첫 사건은 일단락 됐다. 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명분을 챙기고, SK는 실익을 챙기는 제재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하지만 사업기회유용 혐의 적용은 향후 또 다른 쟁점에서도 사안별로 치열한 법리공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