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방역패스 불신 자초한 방역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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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전문가들도 반신반의했지만“소아·청소년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확대를 두고 예방접종전문위원회 자문단에서도 ‘이건 무리’라고 봤다. 이렇게 밀어붙인 방역패스에 파열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근거 뒷받침 없이 무리하게 추진
이선아 바이오헬스부 기자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학원·독서실 등에 적용되는 방역패스 효력 정지를 인용한 것을 두고 한 의료계 인사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전문위는 백신 전문가들로 이뤄진 자문단의 의견을 수렴해 코로나19 예방접종과 관련된 결정을 논의하는 ‘핵심 기구’다. 이 조직 내부에서도 소아·청소년 방역패스 확대 결정을 앞두고 의견이 분분했다는 것이다. 정부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백신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방역패스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합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아·청소년 방역패스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 건 이들이 코로나19에 걸려도 중증화율·사망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0~9세, 10~19세의 누적 치명률은 각각 0.01%, 0.00%다. 50대(0.3%), 60대(1.02%), 70대(4.21%), 80대 이상(14.13%)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방역패스의 목적은 미접종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 설명이 소아·청소년 방역패스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방역패스 논쟁에 기름을 부은 ‘대형마트·백화점 방역패스’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지난 한 해 발생한 집단감염 수를 따지면 백화점은 12건, 대형마트는 19건이다. 미접종자 단독 이용이 인정되는 식당·카페(163건)는 물론 방역패스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교회(233건), 학교(434건)에 비해서도 적다.이 같은 논란은 결국 ‘방역패스가 효과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까지 번졌다. 정부는 지난달 초 식당·카페로 방역패스를 확대한 뒤 2주 뒤부터 확진자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방역패스와 함께 ‘사적모임 6~8명 제한’이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함께 시행했다. 확진자 감소세가 방역패스 덕분이었는지, 거리두기 때문이었는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의료계 일각에서 나온다.
방역패스는 미접종자들의 자유를 필연적으로 제한한다. 아무리 탄탄한 논리와 근거 위에 있어도 ‘개인의 자유’와 ‘공익 보호’라는 상반된 가치를 놓고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정부가 내린 방역패스는 단지 ‘숫자’만으로도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제대로 설명도 못하면서 국민이 방역패스를 납득하고 따르기를 기대하는 건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