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이한열 열사 곁으로" 배은심 여사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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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광장서 열려…아들 묻힌 망월동묘역에 안장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자 '시대의 어머니'로 불린 고(故) 배은심 여사가 11일 영결식을 끝으로 영면에 들어갔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 10분께 빈소가 차려진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했다.
이날은 배 여사의 여든세 번째 음력 생일로, 영정 앞에는 고인을 위한 생일 케이크가 놓였다. 유족들과 장례위원회는 고인을 위한 제를 지낸 뒤 5·18 민주광장으로 유해를 운구했다. 당초 장례식장에서 5·18 민주광장까지 만장과 도보 행렬이 뒤따르는 노제를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취소했다.
고인은 200여명의 추도객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노제는 연세민주동문회 이인숙 회장이 연보낭독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한동건 상임장례위원장(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배 여사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대표와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전남추모연대 박봉주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맡았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87년 잔인한 국가폭력에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워 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한평생을 편한 집 대신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며 "약자를 품어 안은 시대의 어머니셨다. 이 땅의 수많은 민주시민은 어머니의 강인한 눈빛과 따뜻했던 품을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고인의 장녀인 이숙례 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제를 마친 배 여사의 유해는 지산동 자택을 들른 뒤 망월동묘역 8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 묘역은 배 여사의 남편이 안장된 곳으로 이 열사의 묘소를 멀리 마주 보고 있다.
배 여사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화·인권 운동 등에 헌신했다. 그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 퇴원했지만, 퇴원 사흘 만에 다시 쓰러져 회복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이날은 배 여사의 여든세 번째 음력 생일로, 영정 앞에는 고인을 위한 생일 케이크가 놓였다. 유족들과 장례위원회는 고인을 위한 제를 지낸 뒤 5·18 민주광장으로 유해를 운구했다. 당초 장례식장에서 5·18 민주광장까지 만장과 도보 행렬이 뒤따르는 노제를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취소했다.
고인은 200여명의 추도객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길을 떠났다.
노제는 연세민주동문회 이인숙 회장이 연보낭독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 한동건 상임장례위원장(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배 여사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대표와 이용섭 광주시장, 광주전남추모연대 박봉주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맡았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87년 잔인한 국가폭력에 사랑하는 아들을 앞세워 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한평생을 편한 집 대신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로 나서야 했다"며 "약자를 품어 안은 시대의 어머니셨다. 이 땅의 수많은 민주시민은 어머니의 강인한 눈빛과 따뜻했던 품을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고인의 장녀인 이숙례 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제를 마친 배 여사의 유해는 지산동 자택을 들른 뒤 망월동묘역 8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 묘역은 배 여사의 남편이 안장된 곳으로 이 열사의 묘소를 멀리 마주 보고 있다.
배 여사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화·인권 운동 등에 헌신했다. 그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 퇴원했지만, 퇴원 사흘 만에 다시 쓰러져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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