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건의 바이오 산책] 2022년은‘Sugar World’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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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퓨틱스 부사장(Science intelligence advisor)2021년이 mRNA 백신이 11개월 만에 세상에 태어난 ‘RNA World’의 시작이었다면 2022년 은 ‘Sugar World’의 시작이 될 것이다.
1953년 프랜시스 크릭이 제임스 왓슨과 DNA의 나선형 구조를 밝힌 후에 1958년 제안한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중심원리)’는 유전정보의 방향은 항상 DNA에서 RNA를 통해 단백질을 향한 일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DNA와 RNA의 공통점은 3종류 염기(아데닌·구아닌·사이토신)이고, 차이점은 RNA는 유라실, DNA는 유라실에 메틸이 하나 더 붙은 티민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동일한 유전자여도 배양 세포에 따라 서로 다른 당 붙을 수도
유전정보의 뼈대를 구성하는 것은 당(糖·sugar)이다. 당이 데옥시리보오스이면 DNA, 리보오스면 RNA이다.
필자는 서두에 2022년은 ‘Sugar World’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필자보다 앞서 미래는 ‘당(糖)의 시대’가 될 것을 예측해 ‘글리코에라(GlycoEra)’라는 스핀오프 (spinoff) 이름을 붙인 회사가 있다. 2021년 설립한 글리코에라는 림마테크의 자회사이며, 지난해 11월에 5000만 달러를 시리즈A로 투자 받았다. 림마테크는 GSK의 백신 사업부인 글리코백신(GlycoVaxyn)의 스핀오프다.
단백질 표면의 당은 다양한 생물학적 기능 조절에 관여한다. 글리코에라의 ‘당 엔지니어링 (glycoengineering) 플랫폼’ 기술은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당 구조를 만들어서, 특정 당 구조가 매개하는 생물학적 경로를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을 어떤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항암 및 면역조절 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글리코에라의 플랫폼 기술은 무엇일까. 세포에서 생성된 단백질에 락토오스나 푸코오스 등의 당 이 붙는 과정을 통틀어 ‘당화(glycosylation)’라고 한다. 당화는 세포(진핵 생물)의 ‘단백질 번역 후 과정(PTM·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으로서 소포체, 골지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서 원하는 단백질(주로 항체가 주를 이루지만)을 생산하는 경우에 보통 해당 유전자를 인체가 아닌 미생물이나 식물 또는 동물 세포 등에 도입해 발현시키게 된다. 유전자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박테리아 발현(bacterial expression)’은 당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동물세포에서 발현을 하면 당화가 일어난다. 생산되는 재조합 단백질은 인체에서 생산되는 단백질과 PTM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CHO 세포,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당사슬 결합할 수도
당사슬이 왜 중요한가. 당사슬이란 세포 표면에 위치한 단당들의 결합으로 연결된 화합물로 당사슬은 세포 사이에 흐르는 혈액 또는 체액 속에서 각종 영양소(호르몬, 미네랄, 비타민 등)를 인지하고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등을 구별해 면역작용을 한다.당단백질에 부착된 당사슬의 성분과 구조가 인체형과 다를 경우에 치료 효능이나 체내 지속성 및 조직 분포가 달라지며, 특히 인체에 반복해서 투여할 시에는 면역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의약용 당단백질들은 인간과 비슷한 당사슬이 부가되는 CHO(Chinese Hamster Ovary) 세포 등의 동물세포에서 주로 발현되고 있다.
FDA 승인으로 많은 당단백질 의약품을 생산하는 CHO 세포의 경우에도 안전성과 효용성이 검증됐지만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시알산(sialic acid)인 ‘N-GlycolylNeuraminic Acid(NGNA)’를 부가할 수 있다. 시알산은 9 개의 탄소원자를 가지고 있는 단당으로서 동물세포 표면 N- 혹은 O-당쇄구조의 말단에 존재하면서 세포의 분화, 증식과 신호전달 같은 생리현상을 조절한다. 이런 시알산의 발현은 시알산 전이효소와 시알리다아제(salidase)에 의해 조절되며 적당한 양으로 발현된다.
당화 과정으로 당사슬이 단백질에 연결되면 단백질이 ‘폴딩(folding)’ 과정을 거쳐 입체적인 구조물을 형성한다. 이는 단백질이 풀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안정성을 부여한다. 또 단백질에 붙은 당사슬은 세포막으로 가서 세포막 단백질이 돼 항원과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이런 당사슬은 세포 간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이렇게 당화된 단백질을 당단백질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당단백질에는 면역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체 등이다.
따라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당사슬들의 부가를 막기 위해서 CHO 세포의 당사슬 생합성 경로를 재설계해 원하는 구조의 당사슬을 부가하기 위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더 나아가 비인간형 당사슬이 부가되는 문제를 불식하고자 아예 인간 유래의 세포들을 당단백질 의약품 생산용 세포주로 개발하는 연구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생물학 변방에 있던 당과학, 점점 중심으로
지난해 1 월 ‘케미컬 엔지니어링 뉴스(Chemical Engineering News)’는 캐럴린 베르토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당의 진화(glycorevolution)’를 재조명했다. 베르토지 교수는 ‘당과학(Glycoscience)’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당과학은 너무 복잡하기에 많은 과학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생물학 분야의 변방이 됐다. 미국 UC버클리에서 2015년 스탠퍼드로 옮긴 이후 캐럴린 베르토지는 당사슬을 진단, ‘약물 접합(drug conjugate)’을 시키는 회사 등 5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해 ‘당사슬 혁명’의 여전사가 됐다.
캐럴린 베르토지는 1996년 버클리에서 자신의 연구실을 시작하며 세포에 붙은 당의 구조와 역할을 연구하자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베르토지의 연구는 풀기 쉽지 않은 어려운 질문으로 시작했다. ‘살아 있는 세포에서 유기합성 반응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들은 화학생물학(Chemical Biology)의 새로운 가지로 점점 자라나며 커졌다. 베르토지 연구실은 세포 자체가 당사슬을 발현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세포의 정상적인 활동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 세포 외면에서 화학물질을 다루었다. 당시 학생이었고 현재 GSK의 디렉터인 리사 마르코렐은 그 당시 연구 활동을 ‘미친 파란 하늘(blue-sky crazy)’ 같았다고 표현했다.
베르토지는 결국 ‘생물직 교성화학(Bioorthogonal Chemistry)’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999년 33세 나이에 천재들이 받는 연구비라는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Fellowship)’을 받게 됐다.
세포는 케이크를 감싸는 달달한 크림처럼 복잡한 당구조가 코팅돼 있다. 당구조는 다른 세포와의 대화에 관여한다. 케이크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겉모양이 중요한 것처럼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들의 기능이 무엇인가 알아내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중요한 일이다.
10여 년 전 캐럴린 베르토지 연구팀이 면역세포를 감싸는 14개의 단백질로 구성된 ‘시알산 결합 면역글로불린형 렉틴(Siglecs·Sialic acid–binding immunoglobulin-like lectins)’의 구조를 규명했을 때 일반 과학자들이 구조의 복잡함에 놀랐다. 베르토지 교수는 코팅된 당구조가 시각장애자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점자’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Siglecs는 그 점자가 말하는 어떤 패턴을 인식하기 위하여 알아내는 손의 움직임과 같다고 설명한다.
프로탁, 라이탁… 단백질 디그레이더도 당화 과정 필수
한편으로 암세포들은 당구조를 망토와 같이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cloak’은 명사로 몸을 가리는 망토를 의미하고 동사로는 ‘가리다’의 의미다.
암세포는 망토를 입고 자기를 가리며 아무 일도 하는 것 없이 평화로운 상태라고 위장한다. PD-1에 바인딩(binding)하는 MSD의 키트루다나 PD-L1에 바인딩하는 로슈의 티쎈트릭 같은 면역관문억제제들이 작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망토를 벗기고 실체가 암세포라는 것을 눈으로 인식하게 되면 CPI들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죽이는 작용을 다시 한다.
202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라이탁 (LYTACs)’이 소개됐다. 단백질 분해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미 프로탁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개발을 시작한 국내 바이오텍인 이노큐어테라퓨틱스에 속한 사람이라 라이탁은 더 관심이 가는 논문이었다.
세포는 ‘질병을 초래하는 단백질’을 쓰레기와 함께 처리하게 만드는 독특한 전략이 있었다. ‘이것을 세포의 쓰레기 압축기 (trash compactor)로 보내라’고 말썽꾸러기에게 딱지를 붙인다는 개념은 세포 내부의 바람직하지 않은 단백질(undesirable protein)에만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베르토지 교수는 “단백질 분해(protein degradation)라는 개념은 바이오 파마 업계 종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포 내 단백질을 분해하는 첫 문이 열린 것은 2001년이었다. 미국 예일대의 크레이그 크루 교 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프로탁(PROTACs)’이라고 이름 지었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분자(two-part molecule)’로 설계됐다.
한쪽 끝은 METAP2라는 세포 내 암 단백질에 결합하고, 다른 쪽 끝은 ‘E3 유비퀴틴 연결효소(E3 ubiquitin ligase)’를 소환해 METAP2에 딱지를 붙임으로써, 세포의 주요 단백질 재활용자(protein recycler)인 프로테아좀(proteasome)에게 파괴를 의뢰하는 것이다.
질병 초래 단백질의 활성부위(active site)에 결합하는 전통적 의약품과 달리, 프로탁 약물은 단백질을 완전히 제거한다. 프로탁은 분해자의 효과를 오랫동안 지속시켜주고, 활성부위를 겨냥하기보다는 분자의 어느 부분이든 결합함으로써 약물치료가 불가능한(undruggable) 단백질을 가능하게 해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탁에는 한계가 있다. 베르토지 교수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체내의 단백질 중 약 40%는 세포 밖(구체적으로 표면 , 혈류 또는 세포 외 기질(extracellular matrix))에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접근방법을 이용하면 그런 단백질들도 실행 가능한 분해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 분자는 ‘세포 외 표적 단백질’과 ‘세포 표면 수용체’에 결합한 후, 그 단백질을 세포 안으로 연행하여 리소좀(단백질 분해를 담당하는 쓰레기 압축기)에게 인계한다.
라이탁의 개념은 의외로 단순하다. 항체에다가 당사슬을 붙여서 선택한 단백질이 리소좀에 의해 세포 내부로 들어가게 만든다. 분해 효소의 작용이 왕성한 리소좀을 휘젓는다.
베르토지 교수는 라이탁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리시아테라퓨틱스를 발 빠르게 창업했다. 2020년 6월 리시아는 ‘세포 외 질병 유래 단백질’을 겨냥하기 위해 50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연이어 2021년 8월 25일에는 일라이릴리와 ‘3500만 달러의 선금을 받고, 핵심적인 이정표에 도달할 경우 16억 달러의 로열티를 추가로 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은 ‘Sugar World’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단백질, 핵산 혹은 지질에 비하여 당사슬은 우리가 너무 아는 것이 없다. 그러기에 독자 여러분과 필자가 당사슬과 시알산에 대하여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당시대(GlycoEra)’는 더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저자 소개>
배진건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8년 JW중외제약에서 연구총괄 전무를 지냈고 C&C신약연구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아브노바 연구소장과 한독 상임고문을 거쳐 현재 이노큐어테라퓨틱스 부사장(Science intelligence advisor)이자 우정바이오 신약 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을 맡고 있다. 국내외 신약 개발 분야의 석학으로,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Back to BASIC)>이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