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자기만의 것도 아니고…" 정용진, 개미들에 호되게 당했다

개인 투자자들에 혼쭐나는 CEO
소액주주들, 회사 경영진 실책에 적극 행동 나서
'먹튀' 논란 류영진 자진 사퇴·셀트리온 자사주 매입 이끌어
한투연 "앞으로도 소액주주들 정당한 목소리 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국내 증시에서 개미들의 반란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소액 주주들이 힘을 합쳐 회사 경영진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회사 측에서도 '일부의 목소리' 정도로만 치부했던 것에서 벗어자 주요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대부분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가 늘어났지만, 지난해 국내 시장은 횡보 내지 하락하면서 개인들은 재미를 크게 보지 못했다. 이에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에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주주로서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는 카카오와 신세계, 셀트리온 등이다.

'먹튀' 논란에 류영준 카카오 공동대표 내정자 물러나

류영준 카카오 공동대표 신임 내정자.(사진=한경DB)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카카오페이 스톡옵션 행사로 '먹튀' 논란에 휩싸인 류영준 카카오 공동대표 내정자가 결국 자진 사퇴했다.

지난해 11월 카카오 신임 공동대표로 내정된 류 대표는 카카오페이 상장 약 한 달 만인 작년 12월10일 임원들과 함께 카카오페이 주식 900억원어치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면서 개인적으로 469억원을 현금화해 먹튀 논란을 일으켰다. 류 대표가 20만4000원에 매도한 카카오페이 주식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14만원대까지 하락했다. 카카오뱅크 주가는 5만원 밑으로 떨어졌다.경영진의 대량 매도로 주가는 하락했고 소액 주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국회에서도 '카카오페이 먹튀 방지법' 논의가 시작됐다. 주주 신뢰가 약해진 카카오그룹의 주가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어진 사내외의 압박에 류 대표는 자진 사퇴라는 카드를 던졌다.

카카오 주가는 전날 9만50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작년 4월 액면분할(1주→5주) 이후 이틀 연속 10만원을 밑돌았다. 지난해 11월 22일 장중 12만9000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2개월도 안 돼 26% 가량 급락한 것이다.

'멸공' 발언에 호되게 당한 정용진 부회장 "더 이상 언급 안 할 것"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사진=한경DB)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발언 논란으로 주가 급락을 경험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25만원대를 기록하던 신세계 주가는 전날 23만원대까지 주저 앉았다. 그룹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과 신세계 I&C도 올초 대비 각각 10%, 8.4% 하락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운동 조짐까지 일어나면서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 부회장은 더 이상 '멸공'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 부회장이 인스타그램 게시글 하단에 적어둔 '멸공' 해시태그도 모두 삭제됐다.

정 부회장은 작년 연말부터 '공산당이 싫다'는 내용의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최근 잇따른 '멸공' 발언은 정치권으로까지 논란이 번졌다. 그는 '나의 멸공은 중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서는 공산당 관련 언급이 신세계그룹 중국 사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일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신세계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온라인 종목 토론방에는 "주주들 정용진 고소해버려야 하는거 아닙니까?", "회사가 자기만의 것도 아니고 주주들 생각도 해야지", "집단 소송가자"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주주들이 피해를 보상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 부회장이 SNS에 멸공 발언을 한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을 뿐더러 멸공 발언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했다는 것도 명확하게 증명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가 하락 책임져라"…셀트리온 소액주주들, 자사주 매입 요구

(사진=연합뉴스)
셀트리온 소액주주들은 주가가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나자 사측에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요구, 자사주 매입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셀트리온의 최고 주가는 38만8902원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19만원대로 반토막이 난 상태다. 셀트리온헬스케어도 지난해 17만3698원까지 올랐다가 8만원대까지 내려왔다.

셀트리온그룹은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셀트리온 1000억원(54만7946주), 셀트리온헬스케어 500억원(67만3854주)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양사는 1월11일부터 4월10일까지 장내 매수를 통해 자사주를 취득할 계획이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엔 개인투자자들의 치열한 행동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셀트리온의 소액주주 모임인 '셀트리온 소액주주 비상대책위원회'는 회사 측에 자사주 100만주 이상 매입 등을 강력히 요청했다. 비대위는 또 연말 배당에 있어 셀트리온홀딩스와 셀트리온 개인 주주들에게 각각 1대2 비율로 차등 배당을 실시하고 셀트리온 3형제(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합병 계획안에 대한 조속한 발표를 촉구했다.

기업들이 주가 및 경영권 방어 등을 위해 활용하는 자사주 매입은 투자자들에게는 통상 주가 상승의 신호로 읽힌다. 실제로 10일 셀트리온은 전 거래일보다 9500원(5.08%) 오른 19만 6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셀트리온헬스케어도 6.58% 상승 마감했다. 두 회사의 주가가 강세를 기록한 것은 자사주 매입 발표로 투자 심리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은 과거에 비해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에 대해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주주건 소액주주건 주주 권리는 똑같은데 그동안 소액주주들이 너무 홀대받아 왔다는 주장이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공정하지 못한 환경이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됐는데 이제서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변화의 조짐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그동안 침해받았던 권리를 회복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한편에서는 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장기적인 경영활동에 저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자체 보다는 주가만 보고 개인투자자들이 '주가를 올리라'는 주문을 직접하기도 한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중장기 사업을 펼치다보면 주가가 부진한 경우들이 있는데, 이러한 압박은 안정적인 경영을 흔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차은지 한경닷컴 기자 cha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