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제약 마케팅] 당신에게 의약품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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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진숙 지명컨설팅 대표의약품 마케팅은 소비자의 숨겨진 니즈를 찾아내는 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음주 후 숙취해소제를 먹는 것도 제약 마케팅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10여 년 전만 해도 과음 후 약을 찾아 먹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이렇듯 의약품 마케팅은 의약품 시장을 키우는 데 일조하기도 하고, 후발주자가 ‘대세’였던 의약품을 따라잡고 업계 1위를 쟁취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언뜻 보면 산책을 기다리는 강아지 사진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강아지의 목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 강아지의 주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열린 방문 안으로 귀를 쫑긋 세운 강아지의 움직임은 우리 시선을 방 안쪽 침대로 이끌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침대 주변의 헝클어진 옷과 ‘Change of plan?’은 현재 일어나는 상황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진이 그 대단한 ‘비아그라’의 기세를 꺾은 일라이릴리의 ‘시알리스’ 광고라는 것이다. 후발주자였던 ‘시알리스’는 어떻게 ‘비아그라’를 꺾었을까
담당제품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구매행동을 이끌어내는 체계적인 활동을 우리는 마케팅 (marketing)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마케팅’은 익숙한 용어이지만, ‘의약품 마케팅’은 익숙한 용어가 아니다.
당신이 경험한 수많은 구매과정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당신의 지갑을 열게 한 성공적 판매전략은 제품의 기본적인 특성 이외에 그 제품이 당신에게 더 적합한 이유, 즉 소비자의 행동과 심리 분석을 통해 얻은 다양한 통찰력(insight)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의약품은 개발부터 환자에게 적용되기까지 과학, 윤리, 규제 관점에서 일반 제품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의약품 마케팅 활동 역시 많은 규제와 까다로운 조건을 동반한다. 하지만, 타미플루나, 코로나 백신처럼 단기간에 전지구적 수요를 동반한 의약품을 제외한 99%의 의약품의 경우, 당신의 의약품이 비슷비슷한 ‘효과가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은 약’들 중에서 왜 환자에게 더 적합한지 설득하거나, 적합하게 개발하기 위해 환자의 행동과 심리 분석을 통해 얻은 다양한 통찰력이 필요하다.그렇다면 환자에 대한 통찰력이 어떻게 의약품 마케팅에 적용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의약품들인 비아그라(1998년 출시)와 시알리스(2003년 출시) 마케팅 전략을 비교해서 살펴보자.
수많은 비아그라 광고 중 사람들의 인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미친 것은 아마 밥 돌 상원의원의 TV 광고일 것이다. 사람들은 199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계 거물의 입을 통해 발기불능(impotence)이 아닌, 전립선 수술이나 고혈압, 비만, 당뇨병 등의 다양한 질환에 동반되는 증상인 발기부전(erectile dysfunction)이라는 새로운 질환을 알게 됐다.
이 세련된 명명(命名)은 드러내기 껄끄러웠던 개인적 고민과 욕망을 치료받아 마땅한 새로운 질환으로 당당하게 등극시켰다.이제 환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의료인들 역시 좀 더 적극적으로 전립선 수술이나 고혈압, 비만, 당뇨병 등의 환자들에게 이러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비아그라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더 강력한 효과와 긴 지속시간을 주장하는 다양한 경쟁제품이 출시됐다.
그렇게 등장한 여러 제품 중 시알리스는 약효 지속시간 24~36시간이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이것이 과연 장점인지 의료인들과 환자들이 설왕설래하는 중에 시알리스가 내놓은 광고는 절묘했다. ‘Change of plan?’ 한국식으로 말하면 “야, 그게 계획대로 되겠냐?”이다.
이것은 환자들이 실생활에서 비아그라를 복용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오류와 불편에 대한 통찰력에서 얻어진 문제 제기였고, 여기에 많은 환자가 시알리스 구매를 통해 화답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시알리스의 선전’에 대해 비아그라 대응은 강력한 효과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됐고, 이는 시알리스 출시 이후 비아그라 광고전략(노인이나 비만 환자, 그리고 여성 강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노령의 아름다운 커플이 현관과 계단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는 내밀한 장면, 장면에서 점점 젊어지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던 TV광고의 마지막 문구는 다음과 같다. ‘Like the first time’.의약품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
약학대학에 들어가고,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15년째 제약 컨설팅을 하는 필자에게 의약품 마케팅은 당연히 나의 삶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하지만 당신에게 의약품 마케팅은 어떤 의미일까.
‘제약회사 임직원이거나, 투자자가 아닌 나에게 무슨 의미가…’라고 대답하기 전에, 피로해소를 위해 비타민 제제와 간장약을 챙겨 먹고, 음주 후 숙취해소제를 먹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혈당과 체중이 정상인지 아닌지 늘 신경 쓰고, 뇌건강과 말초혈액순환, 우울증, 탈모가 걱정돼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당신이 이처럼 많은 것들이 건강 문제라고 인식하고 개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의약품 마케팅 활동의 결과다. 그럼 세상에 없던 걱정들을 만들어내는 의약품 마케팅은 교활한 제약회사의 상술일까.
당신이 그 상술에 매혹됐다면, 그것은 제약회사의 현란한 상술보다는 당신이 내재적으로 그 욕망과 필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의약품이 나에게 더 적합한지는 의사, 약사와의 상담을 거쳐 더 신뢰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권진숙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약학과 약물학을 전공했다. 한국릴리, 퀸타일즈에서 영업마케팅 교육 전문가로 재직했다. 현재는 제약 영업마케팅 분야에서 체계적 역량강화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지명의 대표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