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상환 언제쯤…" 속타는 ELS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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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증시 부진 유탄 맞은 ELS지난해 1월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한 김모씨는 벌써 1년째 돈이 묶여 있다. 지난해 7월 홍콩H지수와 S&P500지수가 발행일 대비 10% 이상 내리면서 1차 조기상환 조건을 못 맞춘 데 이어, 지난 10일엔 홍콩H지수가 발행일 대비 15% 이상 내리면서 2차 조기상환 조건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반년 후 3차 조기상환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초조하게 글로벌 증시를 지켜보고 있다.
13조 가능했던 4분기 조기상환
실제론 4조6000억만 빠져나와
30% 빠진 홍콩H지수 ELS
지난 달 조건충족 한 건도 없어
전문가 "상환 자체엔 문제없지만
신규 투자는 신중히 접근해야"
ELS 조기상환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우려 등으로 글로벌 증시가 부진한 탓에 많은 ELS가 상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빅테크 규제 등으로 풍파를 겪은 홍콩H지수의 경우 지난해 고점 대비 30% 하락해 이와 연계된 ELS는 모조리 발목이 묶였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미 발행된 ELS의 상환은 대부분 이뤄지겠지만 신규 투자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달 H지수 ELS 1차 상환 성공 ‘0건’
11일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조기상환이 가능한 ELS는 약 13조6100억원어치였다. 그러나 이 중 조기상환에 성공한 건 3분의 1(4조6400억원)에 불과했다. ELS는 주가가 만기날 일정 범위 안에 들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증권사와 투자자가 벌이는 내기와 같다. 보통 만기는 3년인데 반년마다 조기상환일이 도래하고, 이날 주가가 일정 범위 안에 들면 상환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증시가 내리막길을 걷자 지수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특히 문제가 되는 건 홍콩H지수다. 홍콩H지수는 워낙 변동성이 크기에 예상수익률(쿠폰)이 높아 ELS의 기초자산으로 자주 채택돼 왔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홍콩H지수와 연계돼 발행한 ELS는 18조7490억원어치로 S&P500, 유로스톡스50, 코스피200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 그런데 이 홍콩H지수가 최근 중국 정부의 빅테크 규제와 헝다 사태가 맞물리며 큰 폭으로 내리면서 ELS의 발목을 잡았다. 홍콩H지수는 현재 지난해 2월 고점(12,271.6) 대비 약 30% 떨어진 상태다. 1차 조기상환(발행일 후 반년) 기준이 보통 발행가 대비 90%, 2차 조기상환(발행일 후 1년) 기준이 발행가 대비 85%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수가 조기상환 기준을 크게 밑돈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1차 조기상환이 돌아온 홍콩H지수 연계 ELS는 한 건도 조기상환되지 못했다.코스피지수 부진 역시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4분기 내내 코스피200지수는 6개월 전 주가 대비 85~95% 수준에서 움직였다. 만약 조기상환 기준이 발행일 대비 85% 이상이었다면 상환에 성공했겠지만 95% 이상이었다면 반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상환엔 문제없지만 신규 투자는 유의
조기상환은 유예되고 있지만 만기상환엔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손실을 결정짓는 ‘녹인(knock in)’ 구간이 보통 발행 당일 지수 대비 50% 전후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여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홍콩H지수 연계 ELS 역시 지난 2월 고점 부근에서 발행했다고 가정해도 지수가 25%는 더 내려야 손실구간이다. 또 지수가 내리면서 함께 발행되는 ELS의 기준가 역시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기에 조기상환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조기상환일이 돌아오는 홍콩H지수 연계 ELS는 현재 가격대에서 크게 하락하지 않는다면 절반 정도 조기상환을 기대할 수 있다”며 “1분기에도 홍콩H지수와 코스피200 지수 관련 ELS 조기상환 실패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지난해 4분기보다는 상황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다만 신규 투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Fed의 긴축을 코앞에 두고 글로벌 주식시장이 악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하락장의 폭과 기간을 가늠할 수 없는 현재로선 ELS 신규 투자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