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비용만 연간 30조…사업하지 말라는 소리" [이지훈의 산업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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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계획에 맞춰 기업에게 허용된 탄소배출 허용량을 줄일 경우 국내 주요 제조기업들의 탄소배출권거래 비용이 9년 뒤 연 30조원 이상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유럽연합(EU)에서 거래되는 현재 탄소배출권 가격을 기준으로 했을 때 추정치다. 게다가 이 비용은 상승이 예상되는 탄소배출권 가격에 따라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배출권 할당업체 관계자는 “지금 예상되는 2030년 배출권 허용총량 기준은 도저히 맞출 수 없다”며 “사실상 사업을 하지말라는 말”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올해 환경부는 40%이상 줄이기로 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맞춰서 탄소배출 허용총량 감축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선진국 탄소배출권 가격으로 각국의 배출권 가격이 수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EU의 탄소배출권 가격도 장기 우상향 할 것이란 게 대부분의 배출권 거래시장 참여자들의 관측이다. 탄소배출 허용 총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기업들의 배출권 수요는 늘 수 밖에 없어서다. 이를 반영하면 지금보다 9년뒤 기업들이 부담해야 탄소배출권 비용이 30조원보다 훨씬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030년 NDC 35% 감축을 적용하면 탄소배출 허용총량은 3억9200만t,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3억2000만t으로 줄어야 한다"며
"현재 탄소배출 허용총량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당초의 가격 발견 기능을 하도록 거래활성화를 유도해야 하는데, 가격의 오르내림을 우려하는 환경부는 시장 활성화 조치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기업들에게 탄소배출권 이월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부분이다. 3차 계획기간의 경우 첫 두해는 연간 매도량의 2배까지 다음해로 보유 물량을 이월할 수 있고, 2024년과 2025년에는 연간 매도량만큼만 이월을 허용했다. 사실상 기업들에겐 탄소배출권 장기보유를 통한 경영계획을 수립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 셈이다. 환경부는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무기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할당대상 기업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배출권을 자유롭게 매매하고, 이월할 수 있도록 한 증권사들에겐 탄소배출권 거래를 통한 수익 창출을 허용하고,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의 참여자로써의 기능을 꽁꽁 묶어두고 있어서다. 상쇄배출권 인정비중도 10%(2기)에서 5%로 축소했다. 이는 탄소배출권 공급물량을 줄여 시장의 유동성 문제를 일이킬 소지가 크다. 탄소배출권 시장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기업까지 포함한 다양한 참여자가 거래에 나서야 시장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선물 시장과 위탁매매까지 시장을 더 넓히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작년 2분기와 3분기 전기료 인상을 억제했다. 올해 1분기에도 전기료를 동결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탈원전 정책과 신재생에너지의 빠른 확대, 그리고 국제 유가 및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으로 전기료 인상요인이 발생했지만, 이를 단기적으로 억제한 일이어서다. 이는 미래세대가 더 큰 비용을 치루면서 부담해야 할 돈이다. 게다가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이행하기 위해선 더 큰 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비용 부담도 한 요소다. 탄소중립 청구서는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전력 계통 혁신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총 78조 원을 들여 전력망을 보강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송·변전 설비 투자 23조 4000억 원과 배전 설비투자 24조 1000억 원을 합쳐 47조 5000억 원의 예산 투입을 예상됐다. 하지만 올 10월 탄소중립위원회가 NDC를 40%로 상향하면서 30조 원 이상의 추가 비용 투입이 불가피해진거다. 한전은 또 지난 9월 발표한 ‘9차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을 통해 신재생의 발전 간헐성을 보완해줄 1.4GW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계획을 밝혔다. NDC 상향에 따라 추가 ESS 구축에 들어가야 할 비용은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정확한 비용 산정이 필수적"이라며 "기업이 동행할 수 없는 목표치를 던져 놓는 방식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배출권 구매비용 30조 더 늘어
12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오는 2030년 탄소배출허용총량은 연간 3억2000만t으로, 올해보다 2억6900만t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만약 기업들이 현재의 탄소배출 수준을 유지하고, 탄소배출권 가격이 유지된다면 이에 따른 기업 부담이 10조~30조원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줄어드는 탄소배출 허용량 만큼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서 이를 상쇄해야해서다.현재 탄소배출권 가격은 국내에서 t당 가격 3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EU의 탄소배출권 t당 가격은 80유로(약 10만8000원)를 넘어섰다. EU의 배출권 가격을 적용할 경우 2030년께 국내 기업들은 지금보다 30조원 가량을 더 탄소배출권을 사는데 써야 한다. 단순 계산하면 탄소배출권 할당 대상업체(684개)들은 한 회사당 약 438억원의 비용을 더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할당대상 업체에는 반도체·화학·조선·자동차 등 국내 주요 제조산업이 모두 포함돼 있다. 탄소배출권 비용이 급증하면서 기업들간의 형평성 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플랫폼 기업은 할당 대상업체에서 빠져있지만, 정확히 계산이 안될 뿐 이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선진국 탄소배출권 가격으로 각국의 배출권 가격이 수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EU의 탄소배출권 가격도 장기 우상향 할 것이란 게 대부분의 배출권 거래시장 참여자들의 관측이다. 탄소배출 허용 총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기업들의 배출권 수요는 늘 수 밖에 없어서다. 이를 반영하면 지금보다 9년뒤 기업들이 부담해야 탄소배출권 비용이 30조원보다 훨씬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2030년 NDC 35% 감축을 적용하면 탄소배출 허용총량은 3억9200만t,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3억2000만t으로 줄어야 한다"며
"현재 탄소배출 허용총량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배출권이 뭐길래?
전 세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두 가지 탄소가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탄소 배출권거래제이고, 다른 하나는 탄소세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량 단위당 세금을 부과한다. 정부가 탄소배출 기업에 사회적 비용을 직접 추징하는 방식이다. 탄소 배출권거래제는 탄소 배출량마늠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서 제출토록 한 제도다. 전 세계 46개국이 탄소 가격제를 운영하고 있고, 탄소 가격제로 규제받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12Gt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2%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2015년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시작했다. 지금은 1기(2015~2017년)와 2기(2018~2020년)를 거쳐서 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에 돌입한 상태다. 기업들은 정부가 탄소감축 계획에 맞춰 지정한 탄소배출 허용총량에 맞춰 탄소배출권을 할당받는다. 할당받은 배출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시장에서 구매해서 메꾸는 게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의 기본 구조다. 처음엔 기업 부담을 고려해 배출권을 모두 무상으로 할당하다가, 유당할당 비중을 3%(2기), 10%(3기)로 조금씩 늘리고 있다. 작년부터 내년까지 3년간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적용받는 기업들에게 허용된 탄소배출허용총량은 5억8900만t이다. 환경부는 2024~2025년 허용총량을 5억6700만t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에 따른 충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올해부터 이미 600여개 기업 대부분의 배출권이 모자라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 허용총량은 2050년 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수치여서, 훨씬 더 가파르게 허용총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환경부는 올해 탄소중립시나리오를 반영한 탄소배출 허용총량 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당장 내년부터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거래 비용이 폭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기업당 수백억 늘어나는 비용
기업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탄소배출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 환경부가 노리는 것도 배출권거래제를 통해서 기업의 친환경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는 기업은 연간 수백억원의 돈을 탄소배출권 구매에 써야하는 상황이어서다.탄소배출 감축 수준은 기술 의존적이어서 현재 상황에선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기업들이 배출량을 감출할 수 있을지 예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감축수단 개발 여부와 무관하게 기업들은 곧바로 탄소배출량 감축에 압박에 노출된 상황이다. 무엇보다 비용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르고 있고, 향후 훨씬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작년 초 톤당 30유로대에 머물던 EU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 5일 86.66유로까지 치솟았다.문제는 또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당초의 가격 발견 기능을 하도록 거래활성화를 유도해야 하는데, 가격의 오르내림을 우려하는 환경부는 시장 활성화 조치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기업들에게 탄소배출권 이월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부분이다. 3차 계획기간의 경우 첫 두해는 연간 매도량의 2배까지 다음해로 보유 물량을 이월할 수 있고, 2024년과 2025년에는 연간 매도량만큼만 이월을 허용했다. 사실상 기업들에겐 탄소배출권 장기보유를 통한 경영계획을 수립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 셈이다. 환경부는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무기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할당대상 기업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배출권을 자유롭게 매매하고, 이월할 수 있도록 한 증권사들에겐 탄소배출권 거래를 통한 수익 창출을 허용하고,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의 참여자로써의 기능을 꽁꽁 묶어두고 있어서다. 상쇄배출권 인정비중도 10%(2기)에서 5%로 축소했다. 이는 탄소배출권 공급물량을 줄여 시장의 유동성 문제를 일이킬 소지가 크다. 탄소배출권 시장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기업까지 포함한 다양한 참여자가 거래에 나서야 시장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선물 시장과 위탁매매까지 시장을 더 넓히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탄소중립 비용 문제에 입 닫은 정부
산업계는 탈원전·신재생 과속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의 충격이 '에너지 비용 상승'과 '기업 부담 가중'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비용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지만, 전기료 상승과 기업 비용 증가는 서서히 현실화 되고 있다. 이는 곧바로 '물가 폭등'을 야기할 수 있는 도화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정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작년 2분기와 3분기 전기료 인상을 억제했다. 올해 1분기에도 전기료를 동결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탈원전 정책과 신재생에너지의 빠른 확대, 그리고 국제 유가 및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으로 전기료 인상요인이 발생했지만, 이를 단기적으로 억제한 일이어서다. 이는 미래세대가 더 큰 비용을 치루면서 부담해야 할 돈이다. 게다가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이행하기 위해선 더 큰 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비용 부담도 한 요소다. 탄소중립 청구서는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전력 계통 혁신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총 78조 원을 들여 전력망을 보강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송·변전 설비 투자 23조 4000억 원과 배전 설비투자 24조 1000억 원을 합쳐 47조 5000억 원의 예산 투입을 예상됐다. 하지만 올 10월 탄소중립위원회가 NDC를 40%로 상향하면서 30조 원 이상의 추가 비용 투입이 불가피해진거다. 한전은 또 지난 9월 발표한 ‘9차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을 통해 신재생의 발전 간헐성을 보완해줄 1.4GW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 계획을 밝혔다. NDC 상향에 따라 추가 ESS 구축에 들어가야 할 비용은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정확한 비용 산정이 필수적"이라며 "기업이 동행할 수 없는 목표치를 던져 놓는 방식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