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수감자 34%가 마약사범…마약중독 치료 대책 세워야"

'북한 이탈주민의 마약 중독 경험연구' 논문 발표
"군대에서 쓰는 물건을 도둑질했대요. 남한이면 감옥에 보내면 될 텐데, 국가 반역죄라면서 공개 총살을 했어요.

우리는 파리목숨이죠. 마음 둘 데가 없으니 자연스레 마약을 하게 돼요.

"(15년 차 탈북민 A씨)
"제가 사범대를 가려고 했는데 떨어졌어요. 그날 아버지가 울면서 '내가 국군포로다.

너는 공부에 미련을 버려라' 하더라고요.

할 수 있는 게 없죠. 만약 사범대에 갔다면 약쟁이가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12년 차 탈북민 B씨)
최근 '철책 재월북' 탈북민 사건을 계기로 탈북민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에 관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 주민들 사이에 아편·필로폰 등 마약이 만연하며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마약 중독 치료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근무 HA연구소장·유숙경 전남대 정책대학원 강사는 최근 한국중독범죄학회보에 '북한 이탈주민의 마약 중독 경험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법무부에서 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탈북민 수감자 174명 중 마약류 관련 수감자는 60명으로 전체의 34%를 웃돌았다. 저자들은 마약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40∼60대 탈북민 남성 8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탈북민들은 공포를 이용해 대중을 통제하는 북한 사회에서 현실 도피 수단으로 마약에 손을 댔다고 증언했다.

12년째 한국에 거주 중인 50대 탈북민 C씨는 "남한에 와서 교회를 다니는데 힘들 때마다 큰 의지가 된다"며 "북한에도 교회는 있지만 다 관제교회다.

정부 감시를 받는 것이 무슨 종교겠나.

의지할 데가 없으니 마약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마약은 서로서로 감시하는 사회 속에서 자유를 주는 탈출구였다"며 "그 탈출구가 일시적일 수 있지만, 이들은 힘든 현실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마약을 돈벌이 수단이나 의약품처럼 사용하다 중독에 이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17년째인 50대 탈북민 D씨는 "남한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일을 하면 되는데 북한에서는 일할 곳도 없으니 어쩌겠냐"며 "마약을 하다가 조금씩 팔아서 자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민 A씨는 "북한은 전문의 보기가 진짜 어렵다.

상급병원에 가려면 의사한테 뇌물을 써야 하니까 마약이 필요하다.

뇌물 쓰는 돈으로 마약 사는 것이 더 싸다"고 증언했다.

이어 "북한에는 양귀비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걸로 아편 덩어리를 만들어서 쓰기도 한다"며 "아편이 이질에 특효약이라고도 하고, 익숙하고 약도 없는 이런저런 이유로 아편을 쓴다"고 덧붙였다.

논문에 따르면 노동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필로폰을 투약하거나 경제적 궁핍과 불공정한 사회 구조에 체념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었다.

마약을 엄하게 단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약을 밀매하는 북한 체제에 대한 불신도 마약을 끊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연구 참여자들(탈북민들)은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직장을 잃고 배급에서 제외됐다"며 "마약은 일시적 망각제였지만 그 끝은 삶의 파탄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탈북민들은 쾌락과 충동보다는 생존 수단으로써 마약 중독에 이르렀다"며 "이들에 대한 치료는 마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중심으로 한 '인지 재구조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마약 사용과 밀매는 신뢰할 수 없는 국가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시작됐다"며 "마약 유해성 교육 못지않게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