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서 가장 오래된 현판은 한석봉이 쓴 '의열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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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현판 Ⅱ'·'국역 금보개조도감의궤' 출간 국립고궁박물관은 서애 류성룡이 짓고 석봉 한호가 쓴 '의열사기 현판'이 소장 현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로 확인됐다고 13일 밝혔다. 고궁박물관이 이날 공개한 '조선왕실의 현판 Ⅱ' 도록에 따르면 의열사기 현판은 류성룡이 1581년 4월에 지은 부여 의열사(義烈祠) 기문(記文·기록한 글)을 이듬해 새긴 자료다.
크기는 가로 150㎝, 세로 36㎝다.
류성룡의 벗인 홍가신이 1575년 부여 현령으로 부임해 백제 의자왕 시기 충신인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공민왕 때 신하 이존오를 모시기 위한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판 뒤쪽에는 '만력 10년 임오년 2월에 걸다.
생원 한호가 썼다'는 글이 있다.
도록은 "의열사에는 이후 인목대비 폐모에 반대한 정택뢰, 인조 때 청나라를 공격하려다 죽은 황일호가 추가로 배향됐다"며 "의열사는 1866년 훼철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고 설명했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고궁박물관 소장 현판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제작됐다"며 "의열사기 현판은 이례적으로 시기가 이른 편"이라고 말했다. 2020년 발간한 '조선왕실의 현판 Ⅰ' 후속편인 이번 도록에는 종묘, 사직단, 사묘(私廟), 능원묘(陵園墓), 별궁(別宮), 행궁(行宮), 궐외각사(闕外各司) 등에 걸었던 현판 288점에 관한 정보가 수록됐다.
사묘는 자신은 왕이 되지 못했으나 아들이 왕위에 오른 인물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고, 능원묘는 조선왕실 무덤을 의미한다. 별궁은 왕자나 공주가 궁궐 밖에서 거주한 곳, 행궁은 왕이 지방 행차 때 임시로 머무른 거처, 궐외각사는 의정부와 육조처럼 궁궐 바깥에 있던 관청을 뜻한다.
현판 사진, 설명, 게시 장소와 서사관(書寫官·글씨를 쓰는 관원) 이름을 기록한 뒷면 글씨는 물론 현판이 걸렸던 건축물 도면과 지도 등도 실렸다.
도록에 소개된 현판은 국정 운영 제도와 특징, 왕의 효심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사례가 많다.
예컨대 종묘와 사직단에서 제사를 거행하며 나라 발전과 백성 평안을 기원하거나 조선왕릉을 참배하고 선왕의 공덕을 찬양한 글을 담았다.
또 능 관리와 제사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독려하거나 별궁이나 행궁에서 감회를 읊은 글도 있다.
도록 뒤쪽에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판 문양과 특징', '조선왕실 현판 안료 분석',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판 사롱의 직물 조사' 등 논고 세 편을 실었다.
사롱은 현판을 덮었던 직물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숙종 31년인 1705년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 있던 물품을 정비하면서 발간한 책 '금보개조도감의궤'(金寶改造都監儀軌)를 번역한 '국역 금보개조도감의궤'도 펴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금보개조도감의궤'는 전쟁 등으로 파손되거나 유실된 종묘의 기물을 보수한 과정을 기록했다.
임시 관청인 도감(都監)을 설치해 물품을 새롭게 제작해 봉안하고, 상을 내린 내용이 담겼다.
당시 명종 금보(金寶),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함인 보갑(寶匣)이 제작됐다.
어보는 왕과 왕비 덕을 기리거나 사후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으로, 재질에 따라 금보와 옥보 등으로 나뉜다.
번역과 해제 작성은 최연숙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이 맡았다. 최 위원은 "종묘 물품 정비는 숙종 연간 왕실 권위 회복과 안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며 "금보개조도감의궤는 조선시대 장인들이 작업한 최고의 작품에 들어간 인력과 비용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크기는 가로 150㎝, 세로 36㎝다.
류성룡의 벗인 홍가신이 1575년 부여 현령으로 부임해 백제 의자왕 시기 충신인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공민왕 때 신하 이존오를 모시기 위한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판 뒤쪽에는 '만력 10년 임오년 2월에 걸다.
생원 한호가 썼다'는 글이 있다.
도록은 "의열사에는 이후 인목대비 폐모에 반대한 정택뢰, 인조 때 청나라를 공격하려다 죽은 황일호가 추가로 배향됐다"며 "의열사는 1866년 훼철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고 설명했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고궁박물관 소장 현판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제작됐다"며 "의열사기 현판은 이례적으로 시기가 이른 편"이라고 말했다. 2020년 발간한 '조선왕실의 현판 Ⅰ' 후속편인 이번 도록에는 종묘, 사직단, 사묘(私廟), 능원묘(陵園墓), 별궁(別宮), 행궁(行宮), 궐외각사(闕外各司) 등에 걸었던 현판 288점에 관한 정보가 수록됐다.
사묘는 자신은 왕이 되지 못했으나 아들이 왕위에 오른 인물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고, 능원묘는 조선왕실 무덤을 의미한다. 별궁은 왕자나 공주가 궁궐 밖에서 거주한 곳, 행궁은 왕이 지방 행차 때 임시로 머무른 거처, 궐외각사는 의정부와 육조처럼 궁궐 바깥에 있던 관청을 뜻한다.
현판 사진, 설명, 게시 장소와 서사관(書寫官·글씨를 쓰는 관원) 이름을 기록한 뒷면 글씨는 물론 현판이 걸렸던 건축물 도면과 지도 등도 실렸다.
도록에 소개된 현판은 국정 운영 제도와 특징, 왕의 효심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사례가 많다.
예컨대 종묘와 사직단에서 제사를 거행하며 나라 발전과 백성 평안을 기원하거나 조선왕릉을 참배하고 선왕의 공덕을 찬양한 글을 담았다.
또 능 관리와 제사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독려하거나 별궁이나 행궁에서 감회를 읊은 글도 있다.
도록 뒤쪽에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판 문양과 특징', '조선왕실 현판 안료 분석',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판 사롱의 직물 조사' 등 논고 세 편을 실었다.
사롱은 현판을 덮었던 직물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숙종 31년인 1705년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 있던 물품을 정비하면서 발간한 책 '금보개조도감의궤'(金寶改造都監儀軌)를 번역한 '국역 금보개조도감의궤'도 펴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금보개조도감의궤'는 전쟁 등으로 파손되거나 유실된 종묘의 기물을 보수한 과정을 기록했다.
임시 관청인 도감(都監)을 설치해 물품을 새롭게 제작해 봉안하고, 상을 내린 내용이 담겼다.
당시 명종 금보(金寶), 어보(御寶)를 보관하는 함인 보갑(寶匣)이 제작됐다.
어보는 왕과 왕비 덕을 기리거나 사후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으로, 재질에 따라 금보와 옥보 등으로 나뉜다.
번역과 해제 작성은 최연숙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이 맡았다. 최 위원은 "종묘 물품 정비는 숙종 연간 왕실 권위 회복과 안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며 "금보개조도감의궤는 조선시대 장인들이 작업한 최고의 작품에 들어간 인력과 비용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