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새들이 잘사는 도시, 사람도 살기 좋더라
입력
수정
지면A31
도시를 바꾸는 새“숲에선 작은 새도 조용하다. 기다려라. 그대 또한 곧 평온을 누리리.”(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방랑자의 밤 노래’ 중)
티모시 비틀리 지음
김숲 옮김 / 원더박스
336쪽│1만8000원
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치유된다. 새가 날아가는 자태, 두 다리로 통통 뛰어가는 모습, 깃을 다듬는 행동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사람은 새와 교감하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감지한다. 새는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이런 새가 매년 떼죽음을 당한다. 인간이 만든 건물에 충돌해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도시를 바꾸는 새》는 새로 말미암아 변화한 도시의 모습과 새와의 공생을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저자는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친(親)생물 도시계획 이론인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ic city)’를 정립한 도시계획 전문가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싱가포르, 바르셀로나 같은 메트로폴리스가 새의 활동을 고려한 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람은 도심에서 새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새소리가 들리는 도시는 더 즐겁고 생기가 넘치는 공간이 된다. 사람의 마음은 평온해지고, 어린 시절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는 도시인의 생각일 뿐. 새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도심은 정글보다 100만 배는 더 위험한 공간이다. 찰나의 순간에 새는 목숨을 잃는다.새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밝은 빛과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건물이다. 도시의 현란한 불빛은 새의 방향 감각을 혼란케 해 길을 잃게 만든다. 새의 먹이인 나방과 애벌레도 급감시킨다. 특히 유리 벽은 새에게 치명적이다. 새는 유리를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리는 나무와 구름을 반사하기에 새는 꼼짝없이 속을 수밖에 없다. 북아메리카에서만 연간 10억 마리의 새가 유리에 부딪혀 죽는 것으로 추산된다. “빛이 새를 끌어들이고, 유리가 끝장을 내는” 시스템은 빈틈없이 작동한다.
유리 장벽을 피해도 위험은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귀엽게만 보이는 애완 고양이의 DNA에는 사냥꾼의 본능이 내재해 있다.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사냥에 수많은 작은 새가 희생된다. 하늘을 나는 새도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플로리다주에선 천천히 낮게 날던 캐나다두루미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속출했다.
서식지도 급감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아마존강 북부를 오가는 칼새는 가옥의 굴뚝에 둥지를 틀곤 했지만, 굴뚝 입구가 막히면서 머물 곳이 사라졌다. 오소리가 파 놓은 굴을 사용하던 굴올빼미도 도시화로 자연스레 조성된 굴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도시화와 기온 상승 같은 서식 환경 변화 탓에 지난 100년간 조류종의 43%가 집단 괴멸 위기에 처했다.이처럼 새가 죽어갈 때 사람은 무심했다. 하지만 조금씩 새가 내뱉는 소리 없는 절규를 감지한 사람이 늘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인 도시를 새도 함께 사는 공간으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건물 옥상에 나무를 심거나 새가 좋아하는 식물을 심는 방법으로 새의 서식지를 만들려는 노력이 확산했다.
도시와 건물을 설계할 때 적극적으로 새를 위한 디자인을 적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뉴욕에 있는 제이컵 K. 재비츠 컨벤션센터는 리모델링을 하면서 투명 유리창을 새에게 안전한 무늬 유리창으로 교체했다. 새가 둥지를 틀 수 있는 2만8000㎡ 넓이의 옥상 녹지도 조성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인터페이스 본사는 건물 대형 유리에 숲의 흑백 사진을 코팅했다.
샌프란시스코를 필두로 뉴욕과 시카고 같은 대도시가 새에게 안전한 건물을 만들기 위한 규칙을 제정하고 나섰다. 싱가포르에는 지난 5년간 수직 정원이 크게 늘어 ‘정원 속 도시’라는 슬로건을 현실에 구현했다.저자는 “하늘을 나는 새를 위해 일상의 공간을 재해석하면 도시는 인간에게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새를 위해 도시의 모습을 바꾸자는 제안이 일견 한가해 보이기도, 몽상가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무지 탓에 의도치 않게 수많은 새의 목숨을 뺏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하지 않을까.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