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성취' 대신 '게으름' 선택…노동 거부의 시대

팬데믹이 바꾼 노동 패러다임

美 '안티워크' 회원 급증
기업 불매 운동까지 주도
작년 퇴사 453만명 '최대'
지난해 초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가 미국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이곳 이용자들은 기관투자가에 맞서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게임스톱, AMC 등 밈 주식(투자 유행 주식) 가격은 급등락했고 ‘개미들의 저항’은 주식뿐 아니라 암호화폐 투자 열풍으로 이어졌다.

올해는 ‘안티워크(반노동)’가 월스트리트베츠를 잇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환영받는 사람은 사표를 던진 노동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극심한 인력난이 노동시장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기준 레딧의 안티워크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는 160만 명에 달한다. 퇴사를 원하거나 노동 없는 휴식을 바라는 이들은 스스로를 ‘게으름뱅이’라고 부른다. 열심히 일해 직업적 성취를 누리는 대신 게으름뱅이가 되겠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18만 명에 불과하던 안티워크 회원이 급증한 계기는 코로나19다. 작년 11월 기준 직장에 자발적으로 사표를 낸 미국인은 452만7000명에 이른다. 미 정부가 퇴직자 집계를 시작한 2000년 12월 이후 가장 많았다. 팬데믹 후 직장 복귀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면서 안티워크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이들의 안티워크는 사표 제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년과 올해 아마존, 켈로그, 크로거를 향한 불매운동을 진두지휘했다. 노동자의 ‘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노동 거부 움직임은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탕핑(平·똑바로 드러눕기) 운동이 유행처럼 번졌다. 영국에서도 작년 3분기 40만 명에 육박하는 근로자가 사표를 냈다. 여파는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란 예상이다. 제조업 등의 인력난이 계속되면 2030년 미국에서만 1조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