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논란…정용진 vs 일론 머스크, 뭐가 달랐나 [박한신의 커머스톡]

이번주 우리 사회 최대 이슈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발언 논란일듯 합니다. 유통업계뿐 아니라 정치권,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정 부회장의 SNS(사회관계망)는 다소 거칠기는 했지만 '멸공'을 둘러싼 찬반, 기업가 발언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 등을 드러내며 의도치 않게 한국인들의 인식 지도를 그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슈를 보는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기업 경영과 경영자의 역할 차원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경영에 대한 책임'의 충돌 문제일 겁니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또한 이 문제의 본질을 "개인의 표현 자유와 경영자의 책임이 마주치는 사안"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님(이하 존칭 생략)은 국내외 여러 기업들의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이론과 실제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이슈가 한창이던 시기, 전화를 통해 박 교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는 우선 "우리편 듣기 싫은(혹은 불리한) 얘기라고 돌 던지고 찍어 내리면 벌거벗은 싸움만 남는다. 국가와 사회체제에 명백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전제를 깔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영자는 기업과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일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개인적 의사표현이 기업에 가져올 반향에 대해 현실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박 교수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며 작은 이슈 하나로도 건수를 삼아 전쟁을 만드는 현실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진영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경영자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전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실제 정 부회장이 경영하는 이마트 앞에는 여러 사업적·정치적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해당 발언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죠.
홍콩 유력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보도된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논란. 화면 캡처
다만 박 교수는 "경영자가 기업의 브랜드 자산이고 정체성의 핵심인 세상이 됐고,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바뀔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테슬라의 예에서 보듯 개성있는 표현과 튀는 행동이 기업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는 거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창업자는 거침없는 발언과 튀는 행동으로 테슬라를 세계에서 가장 '힙한' 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박 교수는 "우리 사회도 이런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더욱 활발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도 뼈 있는 말 또한 남겼습니다. "경영자가 더 큰 개성과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더 큰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는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개성과 자유의 범위는 기업을 물려받은 2세, 3세와 다를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짚었습니다. 창업을 통해 세계적 기업을 일궈낸 일론 머스크 만큼의 발언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능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으로 들립니다.

이마트 노조가 정 부회장의 발언 자제를 요청하는 입장을 밝힌 뒤 정 부회장은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며 사과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 부회장은 이후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올리지 않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슈는 사그라드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의 SNS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기업가의 발언권에 대해 생각해볼 많은 여지를 남겼습니다. 기업가의 정치사회적 발언에 대한 금기를 깨는 모습, 은둔을 깬 친근한 사생활 노출에 적지 않은 이들이 정 부회장을 응원한 게 사실입니다. 박 교수 진단대로 일론 머스크와 같은 '힙한' 기업인의 모습을 대중들이 본 것이죠.다만 시대와 불협화음을 낸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결국 '우리 편이 아니면 틀렸다'는 진영논리, 기업을 얼마든지 옥죌 수 있는 정치우위의 사회, 창업과 승계 사이 한국 기업가의 현실이 정 부회장의 발언권을 억누른 것이 아닐까요. 박 교수는 "정용진 부회장의 일이 표현의 자유와 경영자의 책임,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정 부회장의 SNS 논란은 분명 각자가 의미를 곱씹어봐야할 여지를 남긴 것 같습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