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책임총리',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고리 되나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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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분점 방안으로 유력하게 거론돼“정치는 생물이다”는 말은 원론적으로는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념 지향성·소신·줏대는 내팽겨쳐도 된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이상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尹-安후보 지금은 단일화 거리두지만
각자 출마땐 필패 뻔해 막판 협상 나설 것
설 연휴 뒤 지지율 추이가 분기점 될 것”
정당과 후보의 선거 목적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체성 손상을 감수하곤 한다. 정당 간, 후보 간 단일화는 ‘정치는 생물이다’는 말로 포장되는 대표적 사례다. 주요 선거(특히 대선) 때마다 단일화가 추진됐고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단일화에 성공하면 대부분 승리를 얻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최초의 단일화 시도는 1987년 대선 때였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거센 단일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적극 나서지 않았고 둘 모두 패배했다. 1990년 3당 합당도 단일화 범주에 속한다. 김영삼 후보는 이를 발판으로 2년 뒤 대선에서 승리했다. 1997년의 김대중·김종필의 이른바 ‘DJP연합’은 단일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도 마찬가지다. 이념 성향으로 보면 맞지 않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후보 교체론까지 나온 노무현 후보가 대선 2주일을 앞두고 단일화의 승부수를 통해 역전승했다. 2012년 문재인 후보는 정치 신인인 안철수 후보와 대선을 40일 정도 앞두고 단일화를 추진했다. 문 후보가 지지율 3위로 내려앉자 취한 특단의 조치였다.
역대 대선 때마다 단일화 시도…성공하면 승리 쟁취
후보 단일화의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단일화가 절실한 측의 결단과 양보다. 집권 뒤 권력을 과감하게 나눌 각오가 돼 있느냐가 관건이다. 1997년 DJP연합 당시 DJ는 JP의 자민련과 공동 정권 구성,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다. 자민련에 의석 분포 비율보다 더 많은 장관직을 주기로 했다. 집권 뒤 내각제 약속이 어그러지면서 공동 정부는 깨졌지만 DJ로선 선거 승리라는 목적은 성취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 성사는 노 후보의 결단과 양보가 밑바탕이 됐다. 여론 조사 문구를 놓고 노 후보 측은 ‘적합도’를, 정 후보 측은 ‘경쟁력’을 주장하면서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막판 노 후보가 과감하게 양보한 것이 대선 승리의 발판이 됐다.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도 여론 조사 문구를 놓고 막판까지 지루한 샅바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양측 모두 양보하지 않은 끝에 안 후보가 일방적으로 사퇴를 선언해 버렸다. 안 후보는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긴 했지만 의례적인 수준에 그쳤다. 안 후보 지지자들은 문 후보 쪽으로 가지 않았고 결국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3.6%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양측 모두 불리한 것은 하나도 내 줄 수 없다는 기싸움이 사실상 단일화 실패로 귀결됐다.
3월 9일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단일화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단일화해야 할 필요 조건은 갖춰져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양강을 형성한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제3지대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확실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 후보의 선택이 판을 가르는 ‘킹핀’이 된 셈이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역시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손을 잡느냐 여부다. 물론 지지율 상승세를 탄 안 후보 측은 단일화에 선을 긋고 있다. 설령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몸값이 높아진 지금 미리 패를 보여줄 필요는 없다. 더욱이 안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면 지지율이 이 후보를 앞선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나오는 상황에서 서두를 이유가 없다. 안 후보는 1월 11일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단일화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안 후보는 완주할 것”이라고 했다.
아쉬운 쪽은 연초 지지율 하락세를 겪은 윤 후보 측이다. 늘어나는 부동층을 잡기 위해서라도 연대가 절실하다. 민주당·국민의힘·국민의당 후보 모두 각각 출마하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겹쳐 민주당에 비해 불리하다. 신년 여론 조사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분이 고스란히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윤 후보는 “지금 단일화 문제를 꺼낼 때가 아니다”고 하지만 당내 분위기는 다르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1월 6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2∼3주 이내에 여론이 후보 단일화 논의에 불을 지필 텐데, 단일화에서 꼭 이겨야 한다”고 했다. 단일화에 대비해 윤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대선 경선에서 윤 후보와 겨뤘던 홍준표 의원은 “단일화 안 하면 (2017년) 탄핵 대선처럼 (야권 후보들은) 2, 3등 싸움만 할 것”이라며 단일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 대선에서 홍 의원과 안 후보, 유승민 후보(당시 바른정당 후보)는 단일화 없이 출마해 각각 24.03%, 21.41%, 6.76%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문재인 후보가 41.08%를 얻어 당선됐다. 홍 의원과 안 후보, 유 후보의 표를 합치면 52.20%로, 단일화했다면 산술적으로는 승리도 가능했다.
지지율 끌어올린 다음 설 연휴 뒤 협상 가능성
그런 점에서 안 후보는 단일화 논의에 선을 긋고 있지만 그의 지지율이 양강을 압도하지 않는 한 단일화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자신이 정권 교체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단일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은 “결국은 국민이 판단할 몫”이라고 했다.국민의당 선거 캠프 관계자는 “단일화에 몸이 단 것은 국민의힘 쪽이어서 우리가 이런 이슈를 먼저 꺼낼 이유가 없다”면서도 “안 후보도 정권 교체라는 대의 명제를 내건 만큼 선거 막판 (단일화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모두 당장은 후보 지지율을 최대한 상승시켜 단일화에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게 우선이고 그 뒤 협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핵심은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인데, 벌써부터 내각을 분점하는 DJP연합 사례가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안철수 총리’ 구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국민의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과거 DJP연합이 중도에 깨진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YTN 라디오에서 “국민의힘에서 나오는 공동정부론이나 민주당이 거론했던 연립정부 모두 대통령제하에서 제도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양측의 굳건한 신뢰가 없는 한 공동 정부는 힘 겨루기로 인해 국정 운영이 삐걱거릴 수 있고 DJ가 그랬듯이 대통령제 아래에선 대통령 마음 먹기에 따라선 쉽게 깨질 수 있다”고 했다.이 때문에 ‘안철수 대통령-윤석열 책임총리’ 정도는 돼야 안 후보와 국민의당이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 그럼에도 정권 교체라는 대의 명제에 대해선 양측이 공감하는 만큼 설 연휴(1월 31일∼2월 2일) 가 지난 뒤 여론과 윤 후보, 안 후보의 지지율 추이가 단일화 논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이 있듯이 단일화 작업에 들어가더라도 여론 조사 문구와 권력 분점을 놓고 치열한 밀고 당기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일화 성공 여부는 아쉬운 쪽인 윤 후보의 결단에 달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