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파업에 천장까지 쌓인 딸기상자…농가 "피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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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기사 파업 장기화“CJ대한통운 택배 파업으로 물량이 몰리면서 우체국 택배도 막혔습니다. 하루종일 고객들의 주문을 취소하느라 전화기만 붙들고 있습니다.”
농민들 "멈춰달라"
주문 지역 중 절반이 발송불가
"신선도 잃어…다 버려야 할 판"
헐값으로 도매시장에 넘기기도
온라인 쇼핑몰도 피해 속출
우체국 가봐도 대기만 '1시간'
밤새 직접 차몰고 배송 뛰어
경북지역의 한 딸기 농가. 귀농해 딸기 농장을 운영해온 50대 부부는 평소라면 수확에 여념이 없어야 할 때지만 요 며칠은 “정말 죄송하지만 주문을 취소해달라”는 전화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주문은 이미 받아놨는데 택배 접수 중단으로 배송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겨우 주문 취소한 물량은 직거래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에 경매시장으로 보내고 있다. 농장을 운영하는 A씨는 “택배가 막혀 어쩔 수 없이 도매시장에 출하하는데, 소비자 직거래로 팩당 1만3000원에 팔던 것을 1만원에 넘겨야 한다”며 “선도가 중요한 신선식품은 택배 파업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CJ대한통운 기사들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농민과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극심해지고 있다. 특히 신선도가 생명인 농산물은 아예 배송이 막혀 상품 가치가 떨어지거나, 이미 배송했지만 며칠이 지나 반송돼 폐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설 대목을 앞둔 농가와 소상공인들의 불안감은 공포로 변하고 있다.
“며칠만 지나도 시드는데…” 농민들 한숨
14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 택배기사 파업으로 농가, 영세상인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긴 가공식품과 달리 과일 채소 등의 신선식품은 배송 중단·지연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CJ대한통운 파업 참여 노조의 70%가량이 집중된 경남 창원, 울산 등 경상권과 경기 성남 일대의 배송 중단 사태가 특히 심각하다. 물량이 다른 배송업체로 몰리면서 우체국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택배 등도 이들 지역의 택배 접수를 중단했다. 택배노조는 롯데와 한진 등 다른 업체에 “CJ대한통운에서 처리되지 못한 물량을 받지 말라”고 압박까지 하고 있다.농가와 소상공인들은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 처지다. 자식처럼 애써 키운 농작물이 소비자와 만나지 못하고 폐기될 상황에 처했다. 네이버 등을 활용해 직거래를 늘려온 농가들은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충북 충주에서 상추 등 쌈채소를 키워 전국에 택배로 발송하던 한 농가의 경우 택배망이 마비되면서 폐기하는 물량이 급증하고 있다. 상추는 열에 민감해 수확 후 3일만 지나도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최대한 빨리 배송하는 게 관건이지만 파업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농민 B씨는 “서울 외엔 대부분 지역으로 발송이 아예 어렵고 다음달에나 좋아질 거라고 한다”며 “시들어가는 상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제주에서 감귤을 수확해 파는 농업법인들도 제철을 맞았지만 물건을 보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망하라는 건지…제발 설 전에 끝내달라”
일선 농가뿐 아니라 택배를 이용하는 소상공인도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반조리 간편식과 각종 양념, 소스 등을 판매하는 한 쇼핑몰 대표는 배송이 막힌 지역의 상품을 들고 근처 우체국으로 뛰어가는 게 일과가 됐다. CJ대한통운 대신 건당 2000원을 더 내고라도 우체국택배를 이용하기 위해서다.최근엔 우체국택배마저 과부하가 걸리면서 직접 배송에 나서고 있다. 업무가 끝난 밤부터 배송이 막힌 상품을 직원들과 함께 차에 나눠 싣고 자정 무렵까지 돌린다. 이 업체 대표 C씨는 “고객에게 지연된다거나 못 보낸다고 말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계속 그러다가는 단골이 다 떨어져 나간다”며 “온라인 커머스는 고객 신뢰가 생명인데 택배 파업은 우리더러 망하라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다른 쇼핑몰 업체는 갓 도정한 쌀을 기획상품으로 내놨다가 대량 주문 고객으로부터 늦은 배송에 항의를 받았다. 연말연시용 선물로 200여 개를 주문받아 발송했지만 택배기사들의 배송 거절로 1주일 뒤 40~50개가 고객에게 전달도 안 된 채 돌아왔다. 업체 관계자는 “갓 도정한 신선도를 내세웠는데 1주일 후 반송되면 두부가 썩은 것과 똑같다”며 “다시 팔지도 못하고 폐기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연중 최대 대목인 설 명절이 가까워져 오면서 소상공인의 불안은 ‘공포’로 바뀌고 있다. 30% 이상 주문이 늘어나는 설 특수를 놓칠까봐 가슴을 졸이고 있다. 한 소상공인은 “명절 주문은 한 해 사업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데 입이 바싹 마를 지경”이라며 “제발 설 전에는 파업을 매듭지어달라”고 호소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