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쓰는 '해운대+암소갈비'…'상표등록 불가' 뒤집은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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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업체와 상표권 분쟁 이후‘해운대’ ‘암소갈비’는 주변에서 흔히 쓰는 단어다. 그렇다면 이들 단어를 조합한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상표등록 출원은 가능할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상표등록을 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상표등록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결정이 나와 주목받고 있다. 상호 사용 기간과 인지도, 매출 등의 요소를 종합해봤을 때 해운대암소갈비집이 독립적인 상표로 식별력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는 특허심판원의 판단을 받은 것이다.
특허청에 상표등록 나섰지만
"장소+원재료 상호 불인정" 결정
언론노출 빈도·검색량 등 수집
"해당 상호, 충분한 식별력 있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효리 씨의 남편 이상순 씨의 친인척이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최근 화제가 됐다. 이 업체는 1964년 창업해 2대째 운영 중이며, 현재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이상순 씨의 외삼촌으로 알려졌다. 연간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백년가게’로 인증받기도 했다.
특허청 “‘장소+원재료’ 상표 될 수 없어”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상표권 이슈가 본격화한 건 2019년부터다. 서울 용산구에 같은 이름의 가게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상호뿐 아니라 대표 메뉴와 간판 이미지도 비슷해 손님들이 “서울에 분점을 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해당 업체는 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본점만 있고 다른 지역 분점은 없다. 결국 업체 측은 용산구 식당을 상대로 상호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내 작년 대법원에서 승소를 확정지었다. 이후 해운대암소갈비집은 2019년 4월 식당 상호명의 상표 출원도 했다. 이에 대해 특허심판원 측이 한 차례 신청을 거절했으나 업체 측은 법무법인 광장을 대리인으로 선임, 거절결정 불복 소송을 제기해 지난달 승소를 이끌었다.해운대암소갈비집은 상호를 상표로 등록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영업해왔다. 오랜 기간 유명세를 유지한 만큼 별도의 상표등록이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모방업체 출현을 막고자 상호를 상표로 등록하기로 했다. 해운대암소갈비집 측은 “상호가 표시된 간판의 모양이 검은색 바탕에 독특한 한글 서예체로 적혀 있고, 갈비와 함께 감자사리면을 끓여 먹는 운영 방식이 식별력을 지닌다”며 상표등록을 신청했다.하지만 특허청은 2020년 9월 해당 상호를 상표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해운대암소갈비집’이 특정 장소와 파는 상품을 결합해놓은 성질 표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표법 33조1항은 ‘지리적 명칭이나 상품의 성질 표시만으로 된 상표는 등록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허심판원은 “‘해운대’는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바닷가를 의미하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하고, ‘암소갈비집’은 암소를 재료로 사용하는 갈비집을 뜻한다”며 “해운대에 있는 암소갈비집을 단순히 지칭하는 용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당시 법적 분쟁을 거치고 있던 용산구의 동일 상호 업체도 문제가 됐다. 심판원은 “서울 용산구의 ‘해운대암소갈비집’, 부산 해운대구의 ‘해운대이름난암소갈비집’ 등 다른 업체들이 있다”며 “특정인의 출처표시로 인정될 만큼 식별력을 획득한 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십 년 인지도 증명…불복심판서 승소
해운대암소갈비집은 특허청의 거절 결정에 대해 불복심판을 제기했다. 법무대리 측은 ‘해운대암소갈비집’이 단순히 상품을 설명하는 상호라는 데 대해선 다투지 않았다. 대신 불복심판에서 상표법 33조2항을 강조했다. 해당 법은 ‘단순히 상품을 설명하는 수준에 그친 상표라고 하더라도, 특정인의 상품을 식별할 수 있게 된 경우에는 상표 등록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해운대암소갈비집이 식별할 수 있는 상표임을 증명하기 위해 매출, 언론 노출 빈도 등뿐만 아니라 ‘인지도’를 나타내는 여러 자세한 증거자료를 수집했다. 네이버와 구글 등에서 전국 유명 갈비집에 대한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해운대암소갈비집’이 각각 2위,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증거자료에 포함했다. 서울과 부산지역 소비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62.4%가 해당 상표를 특정 업소의 브랜드 명칭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결과와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생전 방문해 ‘和氣滿堂(화기만당: 화목한 기운이 온 집안에 가득하다)’이라는 친필글씨를 써줬던 역사적 사실도 강조했다.또한 “특허심판원이 상표등록 거절 당시 근거로 들었던 용산구의 ‘해운대암소갈비집’은 상표 사용이 금지됐다”며 “부산 해운대구의 ‘해운대이름난암소갈비집’은 상표등록 청구 업체의 허락을 받아 운영되는 곳”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특허심판원은 작년 12월 11일 해운대암소갈비집 측의 논리를 받아들여 상표등록 거절 결정을 취소하는 심결을 내렸다.
이 사건을 담당한 이은우 광장 변호사는 “체계적인 증거 제시와 주장을 통해 해당 표지가 식별력을 획득했음을 설득할 수 있었다”며 “자칫 지리적 명칭과 원재료의 명칭이 결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할 수 있는 상표에 대해 사용기간과 인지도, 매출 등을 근거로 식별력을 인정받은 의미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특허심판원이 기존의 판결을 취소함에 따라 해운대암소갈비집은 상표등록 출원 공고가 완료된 상태다. 2개월 안에 제3자의 이의신청이 없으면 상표 출원이 완료된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