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경영참여' 기업이 0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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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무 비켜가는 '일반투자'로국민연금공단은 국내 기업에 수시로 경영 간섭을 하고 있지만, 정작 지분율 5% 이상 보유한 기업 중에선 ‘경영참여’ 목적으로 신고한 곳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이 헷갈릴 만한 용어인 ‘일반투자’ 개념을 만들어 경영 참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시로 경영간섭 가능한 꼼수
16일 국민연금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서 일반투자 목적으로 신고한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100여 곳에 이른다.일반투자는 국민연금이 2020년 새로 도입한 투자 목적 분류다. 기존엔 ‘단순투자’와 ‘경영참여’만 있었다. 일반투자는 “경영 참여 목적은 아니지만 경영진의 잘못 등으로 주주 이익에 훼손이 될 만한 사항이 생긴 기업”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단순투자는 주총 안건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비해 일반투자는 배당 등 정관 변경이나 위법 행위 임원에 대한 해임 청구 등도 의결권 행사 대상이 된다. 대표주주소송도 가능해진다. 사실상 경영 참여 목적의 투자라는 얘기다.
국민연금이 주식 투자 시 경영 참여로 신고하면 까다로운 공시 의무와 주식 매매 차익 등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투자로 투자 목적을 신고하면 이에 대한 의무가 모두 사라진다. 경영계 관계자는 “국민연금만 일반투자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호도해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2020년 2월 일반투자 분류가 도입되자마자 삼성전자 등 57개 기업을 이 분류로 바꿨고 이후 계속 확대해나가고 있다. 지난해 말엔 친환경·탈석탄 기조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면서 한국전력, 현대제철 등 철강·전력 기업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고, 올 들어서는 SK케미칼, 롯데관광개발, 한국가스공사 등이 새롭게 국민연금의 일반투자 대상 기업이 됐다. 국민연금이 이번에 서한을 보낸 기업들도 모두 일반투자 대상으로 분류된 곳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