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흑인이 Fed 주류로...美 금리인상 신중?!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완전히 정치화된 Fed...긴축에 미치는 영향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중앙은행(Fed)의 이사진 3명을 새로 임명했습니다. 다양성을 최우선 인사 기준으로 한 결과 Fed 이사회는 용광로가 됐습니다. 인종차별과 남녀갈등, 좌우대립 등을 뛰어넘어 보려는 화합의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신기록들이 많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Fed 이사의 과반을 차지했고, Fed 부의장 두 명 모두가 여성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반면 백인 남성은 Fed 역사상 최초로 이사회의 소수로 전락했습니다.또 최초의 흑인 여성 Fed 이사가 탄생했습니다. 사상 네번째로 흑인 남성 Fed 이사도 임명됐습니다. 이런 인사가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킹 데이'(1월17일) 직전에 발표된 점에서도 정치적 의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음주(25~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블랙아웃 기간이어서 Fed발 뉴스가 없을 때 이런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어찌됐든 이제야 비로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Fed 이사 수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Fed만 놓고 보자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박은 대못을 1년 만에 모두 뽑아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통합형 Fed'가 미국의 통화정책엔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궁금합니다.
이쯤하면 Fed 인사가 아니라 대법원 인사를 한 느낌입니다. "마음 놓고 민주당식 인사를 해보자"는 꿈을 일단 Fed에서 이룬 것 같습니다. 대법관 인사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대법원에서 이루지 못할 숙원 사업을 Fed에서라도 해보자라며 대리만족도 한 느낌입니다. 그 와중에 득표 계산 같은 정치적 이해득실도 고려됐겠죠. 그래서 그런지 공화당도 가만히 있지 않을 태세입니다.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부결시킬 수 있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이번주 '정인설의 워싱턴나우'에선 정치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는 '용광로 Fed'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Fed나 금감원 모두 희한한 구조

Fed는 어찌 보면 한국의 금융감독원과 비슷합니다. 태생과 구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금감원 직원들은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인 신분도 아닙니다. 좋게 말하면 공적인 업무를 하는 민간인입니다. 조금 냉정하게 얘기하면 어정쩡한 반관반민입니다.

엄밀히 말해 Fed 직원이나 이사들도 그렇습니다. 공무원도 아닌 민간인도 아닌 반관반민입니다. 돈줄 측면에서도 Fed와 금감원은 비슷합니다. 금감원 예산은 금융회사들이 낸 회비에서 나옵니다. 당연히 금감원 직원들의 월급도 그 돈에서 나옵니다. 그러면서 금융회사들을 관리 감독하고 체벌합니다.

Fed도 비슷합니다. Fed의 대주주들은 미국 은행들입니다. 세계 중앙은행에서 유일한 구조입니다. 주주들의 돈으로 세워졌으니 Fed는 매년 번 돈의 6%를 배당금으로 주주 은행에 돌려주기도 합니다. 동시에 은행 감독 업무를 수행합니다.


"월가의 저승사자 왔다"

그런데 그동안 Fed가 월가 은행들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놔줬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 등 민주당 진보파 의원들이 앞장서서 이런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월가 규제를 많이 완화했습니다. 월가 은행들의 위험자산은 급증했고 건전성은 악화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본떼를 보여주겠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가 너무 우리 말을 안듣는다"는 민주당 진보파의 불만도 달래야 했습니다.

그 일타쌍피의 카드가 이번에 Fed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 인사입니다. 신임 Fed 금융감독담당 부의장에 지명된 세라 블룸 래스킨 전 재무부 부장관은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인물입니다.
래스킨 지명자는 소비자금융법과 불평등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2010~2014년 Fed 이사로 있으면서 월가 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 제정의 막후 작업에 관여했습니다. 그래서 월가 사람들은 긴장하고 있죠. "월가의 저승사자가 왔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아마도 이 일만 아니면 Fed 이사로 계속 있었을텐데 2014년 재무부 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Fed를 떠나게 됩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임명되기 전까지 재무부 역사상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성이었습니다.
아무튼 래스킨은 야인이 돼 대학 교수로 돌아가서도 연방 당국은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하고 기후변화 위기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앞으로 월가 은행들의 위험 자산 편입을 줄이고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금융정책이 전환할 가능성이 큽니다.

팻 투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래스킨은 Fed의 긴급 대출 지원에서 전통적인 에너지 기업과 그 직원들을 제외해야한다고 요구해왔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앞으로 전통적 에너지 기업에 대한 주가 움직임도 잘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막강한 Fed 부의장 부부...그래서 공화당은 견제

Fed는 사상 첫 여성 부의장 시대를 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Fed 내 넘버2인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와 래스킨이 모두 상원 인준 청문회를 통과하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부의장 듀오 시대가 열립니다.

나이도 비슷한 두 사람은 모두 민주당이 키운 인물입니다. 대학과 정부를 오가면서 민주당 금융과 경제 정책 개발과 추진에 앞장서왔습니다. 재무부와 Fed를 모두 거쳤습니다.
그리고 참 희한하게도 두 사람의 남편도 민주당 핵심 인물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브레이너드의 남편은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 중국 정책을 총괄하는 인물입니다. 당연히 한반도 문제도 관할해 누구보다 한국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캠벨이 '트럼프 지우기'에 앞장 섰기에 브레이너드도 공화당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화당이 더 경계하는 인물은 래스킨의 남편입니다. 레스킨의 남편은 제이미 래스킨 민주당 하원 의원입니다. 메릴랜드 지역 하원 의원을 하기 전 제이미 래스킨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수사를 맡은 주임검사였습니다.
이 악연에 대해 공화당은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3명 중 래스킨에게 화력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2010년 래스킨이 Fed 이사가 될 때만 해도 만장일치로 상원 인준을 받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민주당 공화당 사이가 좋았던 오바마 시절도 아니라 서로 못잡아 먹어 으르렁 거리고 있고요. 민주당 공화당이 50석씩 나눠갖고 있는 상원에서 조 맨친이라는 중도파 의원이 사사건건 바이든 정책을 좌초시키고 있습니다.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은 아직 래스킨에 대해 왈가왈부를 하지 않고 있어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상원 인준안이 통과하려면 60석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핵옵션'이라는 걸 사용해 과반을 확보해야는데 캐스팅 보트는 결국 조 맨친 의원가 키어스틴 시네마 두 중도파 의원들이 쥐게 됩니다.


비둘기파라지만 고용 중시 가능성 커져

이번에 래스킨 외에 임명된 Fed 이사는 두 명의 흑인 전문가입니다. 리사 쿡 미시간주립대 교수와 필립 제퍼슨 데이비드슨 칼리지 교수입니다.

쿡 교수가 상원에서 인준되면 Fed의 108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이사라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흑인 인권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쿡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세네갈의 다카르대학교에서 아프리카 철학을 공부하고 러시아 주제로 박사 논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철저하게 미국 주류 경제학자들과 거리가 있는 행보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고 바이든 대통령의 인수위원회에도 참여했습니다.
제퍼슨은 학계에서 오래 활동하며 노동시장과 빈곤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왔습니다. 제퍼슨이 상원을 통과하면 유진 블랙(1933~1934), 앤드류 브리머(1966~1974), 로저 퍼거슨(1997~2005)에 이어 네번째 흑인 남성 Fed 이사가 됩니다.

두 사람 모두 통화완화를 주장하는 비둘기파라고 하지만 평생을 빈곤 문제와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왔기 때문에 물가 못지 않게 고용을 중시할 수 있습니다. 백인들의 실업률보다 파월 의장처럼 흑인과 히스패닉들의 실업률을 더 유심히 볼 수도 있겠습니다.

'화이트 Fed'에서 '블랙 Fed'로 바뀌면 변하는 것들

이번에 래스킨을 제외하고 새로 임명된 Fed 이사는 두 명입니다. Fed 이사진 7명 중 3명이니 적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인준에 통과한다면 민주당이 임명한 Fed 이사진이 4명으로 늘어납니다. 직전까지만 해도 공석인 1명을 제외하고 6명의 이사 중 브레이너드를 제외한 5명이 공화당이 지명한 이사였습니다. Fed에서도 공화당 세력을 압도하고 트럼프 지우기가 가능해진 겁니다.

동시에 공화당원인 제롬 파월 Fed 의장이 민주당 지도부나 백악관 뜻과 어긋날 때 4명이 힘을 모아 견제할 수 있습니다. 공화당으로 치우쳐 있던 운동장이 민주당으로 기울어지게 된 것이죠.

결국 Fed의 정치적 당파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도 파월 의장은 통화 정책을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갈등을 벌였는데요. 그 때 양상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임명한 이사들과 파월 의장 사이에 알력이 있을 수 있는 거죠. 물론 '좋은 게 좋다'며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살아온 파월 의장의 인생을 보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Fed가 정치적 갈등의 장이 될 가능성은 이번에 임명된 흑인 이사들 때문에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Fed는 이사 대부분을 백인 남성으로 구성하며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명자 전원이 미 상원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게 되면 Fed 이사진 중 여성은 4명(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 래스킨, 쿡, 미셸 보먼 이사), 흑인은 2명(쿡, 제퍼슨)이 됩니다.

9명 대법관 중 6명이 보수파인 대법원 구성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의 희망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ed 역사상 전례 없는 다양성을 보여주게 될 지명”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백인들의 비판을 의식했는 지 제롬 파월 의장, 브레이너드, 래스킨까지 Fed의 최고위직 3인방은 여전히 백인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미국 내 인종갈등과 남녀차별은 수면 아래에서 작동합니다. 대놓고 하면 그 사람은 법적으로도 처벌 받을 뿐 아니라 교양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래서 항상 불만에 차 있던 백인남성들은 술자리에서 그런 스트레스를 풀고 했습니다. 그게 정치적으로 표현된게 '트럼피즘'입니다.

나중에 Fed가 그런 갈등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Fed 이사진이 용광로 구성이라고 해도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아시안과 히스패닉 이사들은 하마평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 때쯤 가야 진정한 '용광로 Fed'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