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이 겨울엔, 홍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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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엔

홍해리이 겨울엔 무작정 집을 나서자
흰 눈이 천지 가득 내려 쌓이고
수정 맑은 물소리도 들려오는데
먼 저녁 등불이 가슴마다 켜지면
맞아주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
이 겨울엔 무작정 길 위에 서자.

[태헌의 한역]
此冬(차동)

此冬不問出宇庭(차동불문출우정)
白雪飛下滿地積(백설비하만지적)
淸如水晶水聲聽(청여수정수성청)遠處夕燈心心亮(원처석등심심량)
世上何人不迎君(세상하인불영군)
此冬不問立途上(차동불문립도상)

[주석]
* 此冬(차동) : 이 겨울, 이 겨울에.
不問(불문) : 묻지 말고, 무작정. / 出宇庭(출우정) : 집을 나서다. ‘宇庭’은 집과 뜰이라는 뜻인데 ‘집’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白雪(백설) : 흰 눈. / 飛下(비하) : 날아 내리다. / 滿地積(만지적) : 땅에 가득 쌓이다.
淸如水晶(청여수정) : 맑기가 수정과 같다. 원시의 “수정 맑은”을 역자는 ‘수정처럼 맑은’으로 이해하였다. / 水聲聽(수성청) : 물소리가 들리다, 물소리 들려오다.
遠處(원처) : 먼 곳, 먼 곳에서. / 夕燈(석등) : 저녁 등불. / 心心亮(심심량) : 마음마다 밝아지다, 가슴마다 켜지다. ‘亮’은 보통 밝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등불 따위가 켜진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世上(세상) : 세상. / 何人不迎君(하인불영군) : 어떤 사람이 그대를 맞이하지 않을까? ※ 이 구절은 원시의 “맞아주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를 살짝 의역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立(입) : 서다, ~에 서다. / 途上(도상) : 길 위.

[한역의 직역]
이 겨울엔이 겨울엔 무작정 집을 나서자
흰 눈 날아 내려 땅에 가득 쌓이고
맑기가 수정 같은 물소리 들려오리니

먼 데서 저녁 등불이 가슴마다 켜지면
세상 누군들 그대 맞아주지 않으랴
이 겨울엔 무작정 길 위에 서자

[한역 노트]
역자는 초등학생 시절에 겨울이 되면 밖으로 나가 고샅을 헤집고 다니기 보다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엇인가 읽기를 좋아하였다. 이불이 주는 안온함과 함께 창호지 문으로 비치는 밝은 겨울 햇살도 나름 즐겼던 듯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꼼짝 않고 방구석에만 있는 역자가 못마땅하셨던지 이따금 무슨 애가 햇노인처럼 구들장만 지고 있느냐고 핀잔을 하셨다. 역자의 그런 행태 때문에 식구들이 간간이 역자를 햇노인으로 놀리고는 하였는데 초등학생에게 햇노인이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가? 참고로 역자의 바로 밑 동생은 밥숟가락만 놓으면 밖으로 쫓아나가 노느라 겨울마다 발에 동상이 걸리고는 하였다. 역자는 동생처럼 동상에 걸린 일은 거의 없었지만 산언덕에서 눈 위를 뛰어가던 새하얀 토끼는 물론, 친척 아저씨들이나 형들이 뿌려 놓은 싸이나[시안화나트륨]가 든 콩을 먹고 하늘에서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던 꿩을 여러 차례 보았을 정도로는 바깥출입을 하였더랬다.겨울은 만상을 얼어붙게 하는 계절이다. 설령 한겨울 얼음장 밑에 봄이 숨어 있다 하더라도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집을 나서지 않는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도 없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도 없다. 집밖을 나서지 않으면 동생처럼 동상에 걸리는 것 같은 안 좋은 일이야 없겠지만, 동생은 겪어보고 역자는 겪어보지 못한 좋은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겨울엔 ‘얼마간 고생할 각오를 하고’ 일단 집을 나서서 길 위에 서야 한다. 이것이 시인이 이 시를 지은 뜻일 듯하다. 겨울이라고 한사코 이불 속에 웅크리고만 있다면 내려 쌓인 눈이 만든 별천지도 못 보고, 얼음장 밑을 흐르는 맑은 여울물 소리도 못 들을 것이 분명하다.

역자는 원시의 4행 “먼 저녁 등불이 가슴마다 켜지면”을 몇 번이고 되뇌면서 미국의 민요 <산골짝의 등불>을 아득히 떠올려보았다. 눈이 쌓여 차가울 겨울 저녁 날씨 속에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켜지는 “등불” 아래에 응당 따스한 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외로운 만큼 그리워지는 것이 바로 따스한 정이 아니던가! 이 시에서의 등불은 흰 눈과 맑은 물소리와 함께 밝고 깨끗하고 따스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역자는, 여름 손님은 범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자주 들어봤어도 겨울 손님은 어떻다는 말은 여태 들어본 적이 없다. 겨울이라 마음이 허허로울 수밖에 없을 때에 누군가가 찾아온다면 오히려 반갑지 않겠는가! 겨울이면 식혜나 동치미 한 사발에 고구마나 무로도 손님을 접대할 수 있으니 찾아오는 손님이 그다지 ‘무서울’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시인이 “맞아주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달리 내 마음이 그러하니 타인 또한 그러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희원(希願)을 담은 뜻으로도 읽힌다.

역자는 지난 가을에 낡은 여행용 가방을 버리고 새것을 두 개나 샀더랬다. 위드 코로나가 되면 여행사를 경영하는 고향 후배를 따라 여기저기로 여행을 가볼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터널이 그 끝자락을 아직껏 보여주지 않으니, 여행용 가방에는 하릴없이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이제는 그 가방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시인의 권고처럼 무작정 길 위에 서볼 요량이다. 함께 하는 사람 없고 누가 오라 하지 않는다 하여도, 문을 나서면 어딘들 갈 곳이야 없겠는가!

역자는 연 구분 없이 6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3구시 2단으로 재구성하였다. 역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시와는 다소 다른 구법을 취하게 되었다. 원시의 1행과 6행은 기실 거의 동일한 내용인데다 가운데 4행 가운데 앞의 두 행은 아침나절이나 낮의 일로 보이고, 뒤의 두 행은 저녁 무렵의 일로 보이기 때문에, 원시의 1~3행과 4~6행을 각기 하나의 단락으로 묶어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칠언 3구로 이루어진 두 단 모두 1구와 3구에 압운하였으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庭(정)’·‘聽(청)’, ‘亮(양)’·‘上(상)’이 된다.

2022. 1. 18.<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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