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청약 안 하는 기관 찾기 어려워" 정직한 운용사만 손해

기관 대부분 수요예측시 주문가능 최대물량 주문
'10%룰' 지켜야하는 공모운용사는 법지키고 손해
"펀드 규모 감안 수요예측 하도록 제도 바뀌어야"
사진=연합뉴스
최근 LG에너지솔루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 '경(京)' 단위의 주문이 몰리면서 허수청약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운용업계에선 대부분의 기관들이 허수청약에 나서면서 펀드 규모(순자산가치·NAV)의 10%만 청약하는 정직한 공모 운용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모펀드의 경우 펀드 내 한 종목의 비중이 10%를 넘기면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1~12일 국내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을 끝으로 18~19일 일반투자자 청약을 받고 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외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20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 전체 주문규모는 1경5203조원을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 중 가장 높은 수요예측 경쟁률이자 '경' 단위 주문 규모가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러나 역대급 주문의 대부분은 '허수청약'에 따른 착시효과란 지적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기관투자자들은 더 많은 물량을 받기 위해 신청 가능한 최대 수량을 받겠다고 관행적으로 적어왔다. 자본금이 10억원 뿐인 소규모 운용사가 7조6500억원의 주문을 넣는 식이다. 어차피 7조원어치 청약해봐야 경쟁률이 높아 받을 수 있는 규모는 적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오히려 펀드 규모에 맞춰 청약하겠다고 써 내면 주관사가 인수 의향이 없다고 기분나빠하며 물량을 덜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컴플라이언스를 지키는 공모운용사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모펀드가 그렇다. 공모펀드는 자본시장법상 '10%룰'이 있어 펀드 NAV 대비 한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으면 안된다. 아주 적은 확률이나마 NAV 대비 더 많은 물량을 받게 되면 위법을 저지르는 게 되기 때문에 컴플라이언스가 강하게 작동하는 공모운용사는 펀드 규모 대비 10%를 청약한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이를 지키는 대표적인 운용사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기관들이 허수청약을 하는 실정이라 공모운용사는 법을 지키고도 되레 손해를 본다. 허수청약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적은 물량을 받게된다.

운용업계에선 이 같은 관행이 공모주 투자에 있어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일괄적으로 펀드 규모 대비 일정 비율을 청약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공모운용사 임원은 "현재 기업공개(IPO) 시장은 정직하게 법 지켜가면서 청약하는 운용사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구조"라며 "기관에게 우선배정권을 주는 건 기관이 시장 전문가로서 적절한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등 순기능을 하기 때문인데 무조건 더 받겠다고 높은 가격에 많은 물량을 쓰기만 하니 그 기능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IPO 경쟁률이 늘어날 수록 운용사들은 그 종목을 더 사기 위해 기존 종목을 매도해야 하므로 일반 투자자 역시 손해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