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주라고 다 똑같은 성장주가 아니다 [최준철의 같이 하는 가치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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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작년까지 제자리에서 2미터까지 점프할 수 있었는데 올해 들어 갑자기 1미터 밖에 뛰지 못한다면 중력이 바뀌었는지 의심해봐야 할 겁니다.
경기회복과 금리인상 동반…'역금융장세'
실적주 아닌 성장주는 스토리 가진 고평가주 불과
'기업 실적' 주목…과하게 비싼 주식은 피해야
지금 시장이 딱 이런 상황입니다. 흔히 금리는 자산 가격을 결정 짓는 중력에 비유됩니다. 한 마디로 금리가 올라가면 자산 가격을 아래로 당기는 힘이 강해집니다.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긴축이란 단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중력이 약한 달에서처럼 펄펄 뛰어 다니는 일은 더 이상 힘들어집니다.일본의 분석가 우라가미 구니오는 경기회복과 금리인상이 동시에 이뤄지는 사이클을 '역금융장세'라 표현했습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는 침체돼 있지만 돈이 풀리면서 금리가 떨어지고 자산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금융장세'의 반대말입니다. 직전의 금융장세가 코로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세계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펼쳤던 2020년이었음을 고려하면 지금의 시장 양상은 그 때와 반대로 생각할 경우 이해가 쉽습니다.
금융장세에선 돈은 많지만 성장하는 회사를 찾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소수의 고성장주로 돈이 몰립니다. 숫자보단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어차피 대다수의 회사가 성장하는 숫자를 내놓지 못하는 대동소이한 상황인 데다 돈의 기회비용 또한 작으니 당장 돈을 벌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역금융장세에선 성장하는 회사는 많지만 돈은 적어집니다. 그러므로 성장의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볼 수 밖에 없습니다. 금리가 오른 상황이라 미래 현금흐름을 할인하면 현재가치가 작아지게 되니 숲 속에 있는 새보다 손 안의 새를 선호하게 됩니다.
영원히 10억을 벌 수 있는 회사가 100억에 거래된다면 10%짜리 채권을 사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같은 원리로 1%짜리 채권과 동등한 가치를 취한다면 10억원 이익 나는 회사를 1000억원에 사도 괜찮습니다. 즉 금리가 낮을수록 높은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금리가 올라갈 경우 고평가된 주식은 이를 정당화할만한 숫자를 내놓지 못하면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힘듭니다. 중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셈입니다.이렇게 따져놓고 보면 주식투자자가 역금융장세 국면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숫자, 즉 기업의 실적을 챙기는 것입니다. 중력이 세질 땐 성장주라고 다 똑같은 성장주가 아닙니다. 실적주가 아닌 성장주는 그냥 스토리를 가진 고평가주일 뿐입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옥석가리기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지나치게 비싼 주식을 사는 것입니다. 특히 많은 미숙련 투자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어제의 인기주가 조정 국면일 때 싸다고 착각해 덥석 매수하는 일입니다. 한두 번의 조정으로 저평가 단계로 진입하기엔 지난 금융장세 때 부풀어 오른 폭이 너무 컸습니다. 제자리를 찾는 동안 계좌는 스물스물 녹아 내리기 십상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미래지향적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추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의식이 강하고 그것이 그간 우리 경제의 변신을 이끌어왔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온 국민이 되뇌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만큼은 안타까우리만큼 과거지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직전 싸이클의 패러다임에서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미 금리인상과 긴축은 시작됐습니다. 살아남는 투자자가 되고자 한다면 금융장세 때의 달콤한 추억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은 더 이상 중력이 약한 달나라가 아닙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준철 VIP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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