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는 가라…'섞음주' 술판을 뒤집다

'소맥' 자리 위협하는 'RTD'

술과 음료 섞어담은 '혼종술'
저도주·저칼로리로 해외서 인기
韓도 홈술·혼술족 늘며 급부상

이마트, 전국에 'RTD존' 만들고
롯데칠성은 미래 먹거리로 선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RTD(ready to drink) 주류’로 불리는 일명 ‘섞음주’가 주류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마트가 60개 점포(19일 현재 전국 158개점)에 ‘RTD 존’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음료와 술을 판매하는 롯데칠성음료는 섞음주를 중장기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섞음주 브랜드인 ‘화이트 클로’가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의 판매액을 추월한 미국처럼 국내에서도 주류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글로벌 대세가 되고 있는 섞음주

RTD 주류는 해외에서는 2019년께부터 시장의 주류(主流)로 올라섰다. RTD 주류란 술과 음료 등 여러 재료를 혼합해 캔이나 병에 담아 쉽게 마실 수 있도록 한 제품을 말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미국 RTD 주류 시장 규모는 95억8030만달러(약 11조4000억원) 수준이다. 전년(79억9350만달러) 대비 20% 증가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아직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미국 RTD 주류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류 판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화이트 클로의 약진이다. 탄산수에 알코올과 향을 첨가한 미국식 섞음주인 하드셀처(Hard Seltzer)의 대표 브랜드다. 미국의 맥주산업 전문매체 비어 마케터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 화이트 클로 판매량은 약 710만 배럴로 전년 대비 120% 증가했다. 같은 해 버드와이저의 미국 판매량은 1070만 배럴이었다. 화이트 클로 가격이 버드와이저의 두 배인 점을 고려하면 2020년 전체 판매금액으로는 화이트 클로가 140년 전통의 버드와이저를 30% 이상 웃돈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에서도 RTD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일본 RTD 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1년 전 대비 집에서 마실 기회가 늘어난 주종’으로 RTD가 전 연령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일본 RTD 판매량은 17억2248만L로 한국의 라거 맥주시장 규모(18억8000만L)와 맞먹는다.

○롯데칠성 등 주류 기업 앞다퉈 진출

롯데칠성음료 ‘순하리 레몬진’
국내 시장에서도 섞음주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주류 소비 행태 변화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한국인들은 술을 대부분 밖에서 마셨다. 대표 주종은 소주와 맥주를 섞는 폭탄주다. 코로나19는 술 문화를 바꿨다. 식당 대신 집에서, 혼자 가볍게 즐기는 술 문화가 떠오르며 RTD 주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도수와 칼로리가 낮다는 점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 하드셀처’는 도수가 3도다. 500mL짜리 한 캔 열량은 85㎉로 맥주의 3분의 1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최근 무알코올 맥주가 뜨는 등 다양한 주류를 찾고 있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말했다.소주와 맥주 중심이던 국내 주류업체가 최근 RTD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하반기 과일 탄산주 ‘순하리 레몬진’과 ‘클라우드 하드셀처’ 등 신제품을 출시했다.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가 지난해 초 해외투자자와 증권사 애널리스트 대상 기업설명회에서 RTD를 중장기 전략 중 하나로 발표하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사이다 등 논알코올 음료도 만드는 만큼 ‘섞어먹는 술’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비맥주도 지난해 하반기 미국 캘리포니아의 캔 칵테일 브랜드 ‘컷워터’ 등을 들여와 팔고 있다.

수입주류 유통업체 아영FBC 관계자는 “대형마트나 주류 로드숍 등에서 RTD 납품 요청이 늘고 있다”며 “홈술족들이 와인과 위스키에 이어 새로운 술을 찾으면서 맛이 천차만별인 칵테일과 하이볼을 간편하게 즐기는 RTD가 떠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