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탁위는 주주권 침해 기구…어느 연기금이 자국기업에 소송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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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국민연금 대표소송' 강력 반발“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기업 경영 개입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수탁위는 기금 운용에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는 사람들
책임·독립성 없이 과도한 경영간섭…기금 수익률도 악화 우려
기업 "사실상 정부가 국민연금 통해 경영 개입하겠다는 것"
“소송 자체만으로 기업은 이미지 타격과 주가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기금 운용을 책임지지 않는 외부 위원회에 소송을 맡기는 건 부적절하다.”(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20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토론회에서 발표와 토론을 맡은 전문가들은 주주대표소송의 결정 권한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넘기는 것에 대해 일제히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가 수탁위에 과도한 소송 권한을 줘 산업계를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도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경총과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공동 주최했다.
“국가가 연금 사회주의 실현”
국민연금은 기업 경영진 등의 위법행위로 투자자가 손해를 봤음에도 기업이 책임 추궁 등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수탁위를 대표로 이들 경영진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소송 제기를 결정하고, 수탁위는 예외적인 경우에 나선다. 다음달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안건이 의결되면 수탁위가 200~300개 상장사와 그 계열사에 바로 소송을 걸 수 있게 된다. 경총, 상장협 등 경제계 7개 단체는 지난 10일에도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추진을 전면 재검토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이동근 부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소송 결정 주체를 전문적인 기금운용 조직에서 노동계·시민단체 중심의 편중된 위원회로 옮기겠다는 것”이라며 “법률이 아닌 내부 지침에 불과한 개정안에 기대 잘못된 권한 위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발제자로 나선 최준선 교수는 “수탁자의 의무는 기업과의 건전한 대화인데, 대표소송은 대화의 수준을 넘어선 과도한 경영 간섭”이라며 “왜곡된 수탁자 책임론에 따른 ‘기업 흠집 내기’가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고, 결국 국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강제로 걷은 돈으로 주주 노릇을 하며 국민의 이름으로 ‘갑질’을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국가가 연금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비난을 자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 외국 헤지펀드들이 나서 임원 해임 등 다양한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탁위 무분별한 소송 우려”
이날 토론에선 수탁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데다 기금운용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토론은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고 학계·재계 전문가 4명이 패널로 참여했다.정우용 상장협 정책부회장은 권한과 책임이 일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금운용에 책임을 지지 않는 수탁위가 대표소송·주주제안 등을 결정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책임이 없는 수탁위는 경제 상황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수탁자책임활동’ 자체가 목적이 돼 무분별하게 이를 늘리려 할 것”이라며 “수탁위는 순수 자문기구로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지적했다.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위에는 위원 20명 중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관계부처 차관 5명 등 정부 측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 김 교수는 “이런 구성으로는 실질적으로 정부의 정책 방향과 반대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사실상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자본시장을 관리하게 되는 것이고,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자본시장 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우선 기금위를 전면 개편해 전문가 중심으로 합의제 결정을 하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대표소송이 이뤄지더라도 주체는 기금운용본부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