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무시당하는 문 대통령…조급증이 부른 '자업자득'

현장에서

北, 종전선언에 무대응 일관
되레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

文, 가시적 성과 집착 끌려다녀
정책 실패 인정, 방향 바꿀 때

임도원 정치부 기자
“현 상황을 봤을 때 평화 구축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중동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이집트 최대 공영신문인 알 아흐람에 게재된 서면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임기 내내 ‘한반도 운전자·중재자론’을 내세운 문 대통령 스스로 대북 정책의 난맥상을 고백한 듯한 발언이었다.북한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에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연초부터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시기에 우려된다”며 미사일 발사 중단을 촉구했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알 아흐람 인터뷰 기사가 나간 당일에는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해볼 것”이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실험 모라토리엄(잠정 유예) 폐기를 시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철저히 무시당하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야당은 “문재인 정권 ‘평화 쇼’의 처참한 결과”라며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다.

가장 큰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5월 퇴임을 앞두고 대북 정책과 관련해 뭐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 때문에 북한에 내내 끌려다닌다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종전선언을 밀어붙이는 게 대표적 사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 추진 의사를 재차 밝힌 뒤 외교부와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을 통해 미국 측과 종전선언 문안 작성에 매달려 왔다. 북한은 선결 조건으로 ‘이중 기준 철폐’와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아쉬운 처지를 간파하고 “북한의 핵·미사일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을 무장 해제하라고 겁박”(장영일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근부대변인)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오히려 조바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선을 앞둔 시기에’라고 언급한 것이 단적인 예다. 대북 정책 실패가 대선에서 여당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하는 모습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문재인 정부는 말년이 없는 정부”라고 언급한 것처럼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이제라도 대북 정책의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 성패를 평가하는 것은 김정은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다. 임기 말 김정은과의 ‘사진 한 장’이 평화를 구축해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