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부촌 '압구정 현대' 지었는데…" HDC현산 어쩌다 이지경까지 [이유정의 부동산 디테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모습. 사진=뉴스1
1970~1980년대 지어진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대한민국 아파트 역사의 상징으로 꼽힌다. 고급 민영아파트의 시초이면서 부촌의 중심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온 계기가 된 상징적인 단지다.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전용 160㎡이 60억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며 대한민국 최고가 아파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건축 기술 측면에서도 최초 수식어가 많이 붙은 단지다. 무량판(FLAT-SLAB) 구조 등 새로운 설계와 구조, 시공기술을 동원해 1970년대 드물었던 15층 고층 아파트를 지었다. 이런 공법들은 그 뒤 다른 건설사들이 모방해 한동안 아파트 건축 기술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름에서 오는 연관성때문에 이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가 지금의 현대건설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압구정 현대를 비롯해 과거 ‘현대아파트’로 이름 붙여진 대부분 단지를 지은 것은 옛 한국도시개발이다. 현대건설의 주택사업부를 모태로 설립된 주택전문건설사이자, 잇딴 대형 건설사고로 퇴출 위기에 놓인 지금의 HDC현대산업개발이다.

1999년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HDC현산은 정세영 전 명예회장과 장남 정몽규 회장이 이끌었다. 그룹 그늘을 벗어나 삐걱댈 것이란 우려와 달리 HDC현산은 내실 있는 우량 회사로 성장했다. 주력인 주택 사업부문에서 아이파크(IPARK) 브랜드를 바탕으로 자체 분양 사업, 재개발·재건축, 민간 개발형 도급 사업 등 다방면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특히 다른 건설사들과는 달리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자체사업에 적극나서 국내 대표 부동산 디벨로퍼라는 수식이 붙기도 했다. 2014년을 제외하면 계열분리 이후 시공능력평가 순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6월을 기점으로 회사는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부지에서 철거 작업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되면서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를 덮쳤다. 버스에 있던 17명 가운데 9명이 숨졌고 8명은 중상을 입었다. 철거 업체는 따로 있었지만 HDC현산의 관리부실과 불법 재하도급이 도마위에 올랐다. 당시 정몽규 회장이 직접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숙인 고개가 무색하게도 7개월 만에 또 다른 대형사고가 터졌다.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에 조성 중인 주상복합아파트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외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강풍·부실시공·관리 부실·수직부재 부족 등 복합적인 설계상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6명의 실종자중 한 명이 사망했고 다섯명은 생사조차 불분명한 답답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HDC현산이 비건설업 등으로의 공격적 확장을 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관리부실이 나타났을 것으로 분석했다. HDC현산은 2006년 영창악기 인수를 시작으로 유통업, 면세점, 레저사업 등으로 영역을 다각화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계열사만 30곳에 달한다. 특히 ‘모빌리티그룹 도약’을 기치로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했다 포기한 사건은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영역확장을 위해 건설업은 캐시카우로 취급하면서 크고 작은 관리부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HDC현산은 이제 영역확장은 커녕 회사의 존폐위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주가는 11일 종가 기준 2만5000원대에서 21일 현재 1만4000원대까지 급락했다. 잇따른 사고로 HDC현산 측이 최장 1년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신규수주는 물론 이미 지어진 단지에서 조차 ‘아이파크 퇴출’ 움직임이 거세다. 과거의 영광을 내세워 압구정 현대 재건축 수주를 노려보려던 꿈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됐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