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허수청약은 관행"이라 문제 없다고?

운용업계 "현실 외면 안이한 인식"
투자자 보호 위해 '뻥튀기' 막아야

이슬기 증권부 기자
“기관들이 허수청약을 하는 관행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주관사가 알아서 내규에 따라 배분하니 큰 문제는 없다.”

얼마 전 허수청약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를 쓴 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가 전화를 걸더니 이처럼 항의했다. 기사의 요지는 기업공개(IPO) 수요 예측에서 허수청약을 하는 기관이 워낙 많아 펀드 규모(순자산가치·NAV)의 10%만 청약하는 정직한 공모운용사만 피해를 본다는 내용이었다. 금투협 측은 그러나 ‘공모주는 공정하게 배분되고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이 얘기를 전해들은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이번 LG에너지솔루션 수요예측에서도 허수청약으로 물량을 많이 받아간 사모운용사가 많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대표도 “상당수 기관이 펀드 규모와 관계없이 7조원을 청약한다는 것은 많이 청약하면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허수청약은 많지 않았다. 기관투자가는 대체로 자신들이 운용하는 펀드 내 약관을 지키면서 수요예측에 참여했다. 공모펀드는 펀드 규모 대비 10%를 청약했고, 사모펀드는 레버리지 비율 최대 한도인 400%까지 청약했다. 공모주의 증권신고서 역시 ‘납입능력을 초과하는 물량 등 수요예측에 참여해 제시한 매입희망 물량과 가격의 진실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자’는 수요예측 참여 제외 대상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공모주가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기관들이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펀드 규모의 수천%가 넘는 금액을 청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수청약이 관행으로 자리 잡자 일반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기 시작했다. 일반투자자의 접근성이 더 좋은 공모펀드는 몇몇 사모펀드와 달리 허수청약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물량을 적게 받아 낮은 수익률을 낼 수밖에 없다. 공모주 경쟁률이 높아질수록 기관들이 상장 후 해당 종목을 담기 위해 다른 종목을 팔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다른 종목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다.

곳곳에서 과열된 공모주 청약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몇 대형 IPO의 경쟁률이 허수청약으로 뻥튀기되다 보니 작은 IPO는 인기가 없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관행처럼 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관행은 특정한 시기에 관행이고, 상황이 달라지면 파행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야 하는 게 금융당국의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