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공운法,낙농진흥회 공기관 지정되나 [여기는 논설실]

大寒 추위보다 더한 낙농 생산가·정부 싸늘한 대치
우윳값 안정때문? 예산 지원받는 낙농진흥회 운명은…
사진=연합뉴스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가와 정부 사이에 대한(大寒) 추위만큼이나 차가운 한랭전선이 형성돼 있다. 몇 달째 지속된 이 대립·갈등은 최소한 오는 28일로 예정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까지는 계속될 공산이 크다.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른 공운위는 대한민국 공기업 및 공공기관 정책을 최종 의결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의장으로, 통상 기재부 제2차관이 대신 주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건의 중요성 때문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의사봉을 쥘 가능성이 커 보인다.


◆ 28일 예정 공운위가 주목되는 이유


낙농자 모임인 한국낙농육우협회와 낙농진흥회, 정부쪽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기재부가 맞는 ‘우윳가 산정’ 논쟁의 뜨거운 쟁점이 외형적으로는 낙농진흥회에 대한 공공기관 지정 여부로 귀결되는 상황이다. 이 결정을 정부 부처 차관들과 법에 따라 위촉된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운위가 한다. 당연히 공운법에 의거해서다. 이 문제를 포함해 공공기관 정책의 모든 실무는 기재부의 공공정책국이 하지만, 각 부처가 정책적 관점에서 입장과 방향을 정하면서 기재부와 협의하는 형식이 된다. 국내 공공기관은 공운법에 따라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세 종류로 분류된다. 각각의 등급에 따라 권한과 역할, 정부의 감시 감독 수준도 모두 다르다. 한전 가스공사 LH 등 공룡 급부터 일반에는 이름도 생소한 작은 협회에 이르기까지 중앙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은 현재 대략 340개 정도가 있다. 서울시 산하, 성남시 산하의 기관처럼 이보다 많은 지방 공기업이 각 지자체마다 무수히 많다. 이 목록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한국에는 정부 기관과 여타의 독립적 국가기관, 즉 공무원들이 일하는 관공서 외에도 얼마나 많은 공공기관이 있는 지 놀랄 것이다. 갈수록 오히려 심해지는 공공의 비대화는 이런 저런 명분과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것대로 문제가 다분하다.


◆ “정부와 달리 가면 공기관화냐”vs“예산 지원 받으니 정부지침 따르라”


낙농가와 정부의 대립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이 있다. 복잡하다면 상당히 복잡하다. 그 사연을 간단히 요약 하면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2021년 8월 원유 기본 가격이 1리터당 21원 인상됐다. 이때부터 정부와 낙농가 사이에 마찰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정부는 원윳값 인상을 막아 보겠다는 입장이고, 낙농가와 관련 단체들은 원유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는 주장을 한다. 이 바람에 2013년부터 적용된 '원유가격 연동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 방식대로 가면 낙농가 혹은 우유 생산업체가 출하하는 가격이 최종 판매가격 다르게 움직인다. 복잡하다고 볼 수 있다. 우유 생산비용과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연계돼 낙농가의 생산 기반을 돕는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 사이 우유 소비가 줄기도 하고, 국제 가격 비교에서 국내산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와중에 원유 가격이 오르자 정부(농림축산식품부)는 이 제도를 바꾸려고 나섰다. '낙농산업 발전대책'이라는 근사한 제목이 내걸렸다. 그런 과정에서 우유 수급조절을 담당하는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는 방안이 나온 것이다. 이게 기폭제라면 기폭제였고,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현행 공운법에 따르면, 정부 지원액이 기관 수입액의 절반을 넘는 단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낙농진흥회의 정부 지원액 비중은 89%에 달하니 요건은 일단 충족된 셈이다. 정부는 매년 연례행사로 공공기관으로 신규 지정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정 해제도 하는데, 1월 말 한 차례씩 공운위에서 결정된다. 몇 년 전 금융감독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지 여부가 전 금융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공공기관이 되면 정부는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 신중해야 할 公기관화… 동시에 공적자금 받으면 간섭·규제 각오해야


크게 봐서 쟁점과 관심사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원론적인 접근이지만,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첫째, 정부의 공공기관 지정 권한은 어느 정도 용인될 것인가다.

둘째, 보조금이든 지원금이든 나라 예산을 받아쓰면 정부 간섭과 감독을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정부도 낙농가도 우유 가격 문제와 관련해 '시장원리'를 강조하고 주장하는데, 서로가 말하는 시장원리란 어떤 시장의 어떤 원리를 말하는 지에 대한 공론이 필요해 보인다.넷째, 원유가격 연동제니 차등가격제니 하는 복잡한 가격산정 방식이 과연 효율적이고 최선인가 하는 실질적 연구가 다급해졌다. 원유가격 연동제에는 생산비와 물가가 반영된다는 것이고, 용도별 차등가격제에는 시장 수요를 반영할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고 인위적인 가격 결정 구조를 두고 누가 시장원리를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궁극적으로 정부는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하는 게 맞는지, 또 가능하다고 할 때에도 최대한 자제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설령 법에 의거한다 해도 강제권의 행사에 앞서 자율 조정, 협상과 타협의 묘를 살리는 게 선진 행정일 것이다.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고, 공적 자급이 들어간다고 모두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면 살아남을 민간영역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정부 뜻과 다르다면 다 공기관으로 할 거냐”라는 업계의 반발 주장에 관련 부처는 진지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차제에 민간 부문에서도 거듭 경계할 일도 분명히 있다. 한국에는 정부 예산, 나랏돈, 공적 지원금에 너무 쉽게 손을 내밀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예사로 '공돈'이라고 한다. 농어민 개인이나 복지 지원금을 받는 중장년층부터 번듯한 기업까지 예외가 없다. 하지만 이런 돈은 반드시 감시 감독 이상의 무서운 규제를 동반한다. 그저 나가는 '공짜 돈'은 없을뿐더러,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있어서도 곤란하다. 이 사실을 누구도 잊어선 안 된다. 간섭받고 싶지 않다면 홀로서야 하고 자립해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