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노동운동 역사 오래된 나라는 노동이사제 안 한다?

국회 보고서 따르면 1951년 독일 시작으로 현재 유럽 19개국 시행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확정됐지만 정치권 공방은 멈추지 않고 있다.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찬성 의사를 밝힌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전면 보류를 공약하고 나섰다.

안 후보 캠프의 최진석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 24일 "왜 노동운동의 역사가 우리보다 한참 오래된 나라들에서조차 입법된 예가 없겠습니까"라며 "노동이사제를 제기할 생각 자체도 하지 않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정치환경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최 상임선대위원장의 말처럼 노동이사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없을까.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기업 이사회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함께 내리며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우리나라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이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공기관에 우선 도입될 예정이다.

13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오는 7월부터 노동자 대표가 추천하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비상임이사(노동이사) 1명을 이사회에 참여시켜야 한다.

임기는 2년이고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은 17, 19,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찬반 논란속에 폐기됐다가 21대 국회에서 처리됐다.

재계에선 우리나라의 대립적인 노사관계 현실에는 맞지 않다며 민간 기업으로의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공운법 개정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사례가 없지만 유럽 19개국은 시행중이다. 노동이사제는 유럽에서 먼저 제도화된 노사 공동결정제도로 150년 이상의 노동운동 역사를 가진 독일에서부터 도입됐다.

독일은 1951년 고용 규모 1천명이 넘는 석탄·철강 기업의 감독이사회 이사진을 노사 동수로 구성하게 하는 광산철강공동결정법(몬탄공동결정법)을 도입했다.

1976년에는 석탄·철강 이외 분야의 직원 2천명 초과 기업에도 노동자대표 감독이사회 참여를 의무화한 공동결정법을 시행했고, 2004년에는 이를 석탄·철강 이외 분야 직원 501~2천명 기업으로 확대한 노동자대표 1/3 참여법을 마련했다.
뒤를 이어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덴마크, 핀란드, 헝가리, 룩셈부르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다만 유럽은 국가별로 제도와 경영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사제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독일처럼 기업 이사회가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로 이원화된 나라들이 많다.

보통 경영이사회는 경영집행을 책임지며 감독이사회는 이를 감독·지도하고 경영이사의 임면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구분 없이 일원화된 이사회 제도를 가진 나라도 있는데 스페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다.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민간 기업에서도 노동이사제를 운영하고 있으나, 스페인, 포르투칼, 폴란드 등 5개국은 우리처럼 공공기관에만 도입했다.

유럽 국가들은 길게 잡아도 민주노조운동 역사가 50년 정도인 우리나라보다 노동운동 역사가 길다.

정리해 보면 노동운동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 노동이사제가 입법된 예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진석 상임선대위원장은 2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독일을 예로 들면 노동이사가 경영이사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감독이사회에서 감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영에 관여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며 "지금 독일에선 우리가 말하는 경영에 참여하는 이사가 아니고 감사·감독 역할을 하는 이사임에도 역사적 오류라는 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노동이사제) 법률 자체도 문제지만 이렇게 문제가 있는 법률이 통과되는 행태를 보면 노동권력을 확대하려는 노동 기득권과 표만 얻으면 된다는 정치기득권의 야합의 결과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