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 그리고 비즈니스 혁신 [정삼기의 경영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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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정삼기 서앤컴퍼니 대표 skchung@seoandcompany.co.kr
2022년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역대급 불수능'이라는둥 여러 뒷얘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의한 첫 수능이라는 데에 눈길이 갑니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의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에 목표를 둡니다.문·이과 통합의 단초는 임현정이라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잘 보여줍니다. 이 피아니스트는 서울대에서 수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합니다. 그는 문과와 이과, 더 나아가서 예술과 과학이 한 몸이라며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음악에 수학적 기법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에 따르면, 바흐는 리듬 대신에 두 개의 다른 선율이나 주제를 대비시키는 대위법과 자리바꿈 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했습니다. 자리바꿈 기법은 한 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모든 가능한 조합을 찾는 '순열조합론'이라는 수학적 개념입니다.
STEM, 소위 과학(S), 기술(T), 공학(E), 수학(M)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떠오르는 이공계 분야라고 합니다. 미국 정부는 이 분야의 인재 양성을 핵심 교육목표로 내세우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등 신기술 도입에 따르는 사회의 복잡성 심화와 윤리적 가치판단에는 사회학과 철학 같은 인문사회 분야가 나서야 합니다. 도시계획에는 디자이너, 교통 관련 법규에는 인류학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기업들에게 이공계와 인문계의 균형은 이론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인공지능과 플랫폼 기술로 인해 기술과 시장의 동기화가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니즈와 시장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반대로 소비자와 시장이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인문계나 이공계 편향의 마인드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지금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STEM 출신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이공계와 인문계의 이종 DNA들이 함께한 경우가 많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전자회로 마니아가 있었기에 자신의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옆에는 문학잡지 편집장을 지낸 스티브 발머라는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제프 베이조스는 영문학 전공자로 훗날 소설가로 데뷔한 아내 매켄지 스콧과 함께 전자상거래 세계를 그렸습니다. 페이스북은 컴퓨터 마니아 마크 주커버그와 역사학 전공자인 크리스 휴스 등 인문계 괴짜들의 의기투합으로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투자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도 출신으로 가치투자밖에 모르던 워렌 버핏은 수학 전공을 그만 둔, 문사철 분야의 대독서가 찰리 멍거와 평생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이런 이종 DNA 융합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통 대기업들은 창업자와 후계자 대부분이 경제, 경영 등 인문사회계 출신들입니다. 1980년대 이후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신흥 테크기업들의 창업자는 컴퓨터공학 등 자연계 출신들이 대부분으로, 인문계 출신들과 함께한 경우는 드뭅니다. 이들은 인문계와 자연계가 서로 '넘사벽'이었던 세대입니다. 이공계 출신이 열심히 만들고 인문계 출신이 열심히 해외에 내다 팔면 그만이었습니다. 어쩌면 고속성장과 추격형 경제 시스템이 우선이었던 시대의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경계가 무너지고 이종 파트너간 융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선 식품의 새벽 배송 세상을 연 스타트업 창업자는 글로벌 금융기관 출신으로 제프 베이조스를 연상시킵니다. 컴퓨터 엔지니어와 경제학도 출신이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을 융합하여 축산업 혁명을 준비하는 곳도 있습니다. 바이오 스타트업 창업가들 중에는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자본시장 전문가 덕분에 성공한 경우가 적잖습니다. 새로운 개념으로 이커머스 플랫폼 혁신을 준비하는 젊은 블록체인 마니아와 노련한 마케팅 전문가도 있습니다. 컴퓨터 전공자 남편과 함께 아동용 장난감 플랫폼 세상을 준비하는 아동학 전문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존 비즈니스 방식에 함몰되어 신기술 도입을 망설이며 성장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도 기술 나르시시즘에 빠져 시장 흐름과 괴리되며 좀비로 변한 기업도 많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기술과 시장 간의 탈동조화가 정체의 공통적인 이유입니다. 시장과 기술을 동조화하면서 기술 개발과 시장 적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사고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비즈니스 혁신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의성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상상력과 창의성은 직관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쉽게도 실물산업과 금융 모두 직관이 스프레드시트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직관으로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고도 수학적 증명에 애를 먹었습니다. 미국 실리콘벨리는 직관에 뛰어난 벤처캐피탈 생태계가 주도합니다.인공지능 역시 과학적 창의성 못지않게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컴퓨팅파워로 작동됩니다. 이 가운데 데이터는 과학보다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 중요합니다. 만물의 현상은 모두 데이터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한 가치 창출은 불가능합니다.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처음이자 끝입니다.마리 퀴리, 알버트 아인슈타인, 마사 그레이엄, 파블로 피카소 등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과학과 예술의 대가들은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 넘나든 창조적 마인드의 전형들입니다. 경제사상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평생 예술에 탐닉했습니다. 프랑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는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라고 했습니다.
영화 '뷰티플마인드'에서 존 내시는 평생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떠한 논리적 이성도 사랑이라는 신비함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중략) 당신은 나의 모든 이성입니다(You are all my reasons)." 이성과 감성은 늘 함께하는 동반자로 지향점이 같습니다. 문·이과 통합 세대가 주도할 비즈니스 세계가 기대됩니다.
*필자는 삼일회계법인과 KDB산업은행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 등을 창업·운영하였습니다. 현재는 사모펀드 운용사 서앤컴퍼니의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과 <괜찮은 결혼>을 번역했고 <디지털 국가전략: 4차산업혁명의 길>을 편역했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STEM, 소위 과학(S), 기술(T), 공학(E), 수학(M)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떠오르는 이공계 분야라고 합니다. 미국 정부는 이 분야의 인재 양성을 핵심 교육목표로 내세우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등 신기술 도입에 따르는 사회의 복잡성 심화와 윤리적 가치판단에는 사회학과 철학 같은 인문사회 분야가 나서야 합니다. 도시계획에는 디자이너, 교통 관련 법규에는 인류학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기업들에게 이공계와 인문계의 균형은 이론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인공지능과 플랫폼 기술로 인해 기술과 시장의 동기화가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니즈와 시장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반대로 소비자와 시장이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인문계나 이공계 편향의 마인드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지금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STEM 출신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이공계와 인문계의 이종 DNA들이 함께한 경우가 많습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전자회로 마니아가 있었기에 자신의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옆에는 문학잡지 편집장을 지낸 스티브 발머라는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제프 베이조스는 영문학 전공자로 훗날 소설가로 데뷔한 아내 매켄지 스콧과 함께 전자상거래 세계를 그렸습니다. 페이스북은 컴퓨터 마니아 마크 주커버그와 역사학 전공자인 크리스 휴스 등 인문계 괴짜들의 의기투합으로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투자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도 출신으로 가치투자밖에 모르던 워렌 버핏은 수학 전공을 그만 둔, 문사철 분야의 대독서가 찰리 멍거와 평생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이런 이종 DNA 융합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통 대기업들은 창업자와 후계자 대부분이 경제, 경영 등 인문사회계 출신들입니다. 1980년대 이후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신흥 테크기업들의 창업자는 컴퓨터공학 등 자연계 출신들이 대부분으로, 인문계 출신들과 함께한 경우는 드뭅니다. 이들은 인문계와 자연계가 서로 '넘사벽'이었던 세대입니다. 이공계 출신이 열심히 만들고 인문계 출신이 열심히 해외에 내다 팔면 그만이었습니다. 어쩌면 고속성장과 추격형 경제 시스템이 우선이었던 시대의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경계가 무너지고 이종 파트너간 융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선 식품의 새벽 배송 세상을 연 스타트업 창업자는 글로벌 금융기관 출신으로 제프 베이조스를 연상시킵니다. 컴퓨터 엔지니어와 경제학도 출신이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을 융합하여 축산업 혁명을 준비하는 곳도 있습니다. 바이오 스타트업 창업가들 중에는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자본시장 전문가 덕분에 성공한 경우가 적잖습니다. 새로운 개념으로 이커머스 플랫폼 혁신을 준비하는 젊은 블록체인 마니아와 노련한 마케팅 전문가도 있습니다. 컴퓨터 전공자 남편과 함께 아동용 장난감 플랫폼 세상을 준비하는 아동학 전문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존 비즈니스 방식에 함몰되어 신기술 도입을 망설이며 성장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도 기술 나르시시즘에 빠져 시장 흐름과 괴리되며 좀비로 변한 기업도 많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기술과 시장 간의 탈동조화가 정체의 공통적인 이유입니다. 시장과 기술을 동조화하면서 기술 개발과 시장 적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사고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비즈니스 혁신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의성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상상력과 창의성은 직관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쉽게도 실물산업과 금융 모두 직관이 스프레드시트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직관으로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고도 수학적 증명에 애를 먹었습니다. 미국 실리콘벨리는 직관에 뛰어난 벤처캐피탈 생태계가 주도합니다.인공지능 역시 과학적 창의성 못지않게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컴퓨팅파워로 작동됩니다. 이 가운데 데이터는 과학보다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 중요합니다. 만물의 현상은 모두 데이터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한 가치 창출은 불가능합니다. 데이터는 인공지능의 처음이자 끝입니다.마리 퀴리, 알버트 아인슈타인, 마사 그레이엄, 파블로 피카소 등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과학과 예술의 대가들은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 넘나든 창조적 마인드의 전형들입니다. 경제사상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평생 예술에 탐닉했습니다. 프랑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는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라고 했습니다.
영화 '뷰티플마인드'에서 존 내시는 평생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떠한 논리적 이성도 사랑이라는 신비함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중략) 당신은 나의 모든 이성입니다(You are all my reasons)." 이성과 감성은 늘 함께하는 동반자로 지향점이 같습니다. 문·이과 통합 세대가 주도할 비즈니스 세계가 기대됩니다.
*필자는 삼일회계법인과 KDB산업은행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 등을 창업·운영하였습니다. 현재는 사모펀드 운용사 서앤컴퍼니의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과 <괜찮은 결혼>을 번역했고 <디지털 국가전략: 4차산업혁명의 길>을 편역했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