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나와"…CJ대한통운 노조의 '생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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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9
현장에서
시민·기업·동료·정부 모두 무시
본사·李회장 집 앞 아수라장
박한신 생활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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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고위 간부가 지난 25일 밤 단식농성 중단을 선언하며 밝힌 ‘투쟁 지침’이다. 한 달째 파업 중인 CJ대한통운 노조의 파업 전선을 이재현 CJ그룹 회장으로 옮겨가겠다는 것이다. 벌써 CJ그룹 본사와 이 회장 집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재현 XXX’라는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의 낙서도 등장했다.투쟁 방법도 거칠지만 문제는 노조가 정부, 시민, 기업, 동료 택배기사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주무부처의 조사 결과마저 무시하며 폭주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개입을 자제하던 국토교통부는 파업이 장기화하자 24일 “현장을 점검한 결과 택배회사가 분류인력 투입 등 합의 사항을 양호하게 이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파업에 돌입한 노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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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택배기사들은 파업의 볼모가 되고 있다. 전체 기사의 90%를 차지하는 비노조원 일부는 23일 집회를 열고 “파업으로 거래처가 끊기고 수입도 줄었다”며 파업 중단을 호소했다. 일각에선 일반 노조원조차 집행부의 희생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터로 복귀하고 싶은 노조원들을 집행부가 “제명·보복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택배기사는 “설이 낀 달이면 CJ대한통운 기사는 월 800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데 파업자들은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있다”며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막는 기사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결국 노조 집행부가 논리적으로 궁지에 몰리자 오기에 찬 ‘재벌 회장’ 저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대부분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투쟁 방식이다. “무리한 파업으로 일자리가 생기는 건 노조 수뇌부뿐”이라는 일선 택배기사들의 비판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