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극복하는 건 희망…웃는 날 올겁니다"

소프라노 박혜상 독창회

지난달 뉴욕메트 주역 데뷔
'마술피리'의 파미나역 연기
"역사책 뒤지며 캐릭터 분석"
NYT "벨벳같은 목소리" 호평

내달 5일 예술의전당서 공연
죽음 받아들이는 마음 노래
소프라노 박혜상(왼쪽)이 지난달 14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미나 역을 열연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제공
“고등학생 때부터 염원했던 무대였어요. 어릴 때 꿈만 꿨던 곳에 직접 서게 돼 굉장히 떨렸습니다. 첫 무대라 치열하게 연습했죠. 리허설이 끝난 뒤에도 세 시간 가까이 개인 연습을 하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큰일을 마치니 온몸에 힘이 빠져 격리기간이 되레 반가워요.”

지난달 오페라 ‘마술피리’의 여주인공 파미나 역을 맡아 미국 뉴욕 메트오페라에 주역으로 데뷔한 소프라노 박혜상(33·사진)의 소감이다. 세계 오페라의 중심지에서 주역으로 데뷔했으니 오죽했을까. 뉴욕타임스는 리뷰를 통해 “박혜상이 벨벳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냈다”고 호평했다. 지난 20일 귀국해 자가격리 중인 박혜상을 25일 전화로 만났다.
박혜상은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성악가는 아니었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한 2015년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엔 메트오페라가 유망 성악가를 후원하는 영아티스트에도 선정됐다. 그런데도 내내 오페라 단역을 전전했다. 처음 뉴욕 메트오페라 무대에 오른 건 2017년.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에서 단역(숲의 정령)을 맡으면서였다. 이후 주역을 맡기까지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주인공으로 발탁된 비결은 뭘까. 박혜상은 오페라를 준비하면서 발성은 물론 캐릭터 분석에 몰두했다. 지난해 마술피리의 파미나 역으로 발탁되자 그는 역사책부터 찾았다. 모차르트가 마술피리를 썼을 당시 여성이 처한 상황과 계급을 살펴봤다. 캐릭터를 생생히 선보이고 싶어서였다.지금은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푹 빠져 있다. 다음달 26일 독일 베를린슈타츠오퍼에서 개막하는 사랑의 묘약 여주인공 아디나역을 맡았다. “파미나에서 빠져나와 아디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악보만 봐서는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서요. 19세기 초에 살았던 여성이 글을 읽을 줄 알고, 결혼은 기대하지 않는 등 해석할 여지가 너무 많아서요.”

독일 주역 데뷔에 앞서 박혜상은 다음달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창회 ‘Amore&Vita(사랑과 삶)’를 연다.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나를 괴롭히지 마오’, 조지 거슈윈의 ‘다시 시작해’ 등 총 12곡을 들려줄 예정.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현악4중주단 스트링 콰르텟이 협연한다.

오페라 준비에 바쁠 텐데 독창회를 왜 열까.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뒤로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자 공연을 기획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생소한 곡들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이별의 고통을 담아낸 존 다울랜드의 ‘다시 돌아와요, 달콤한 연인이여’, 끝을 노래하는 헨리 퍼셀의 ‘내가 대지에 묻힐 때’ 등을 부른다. 박혜상은 “팬데믹으로 친구들을 떠나보내면서 연약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며 “죽음을 곱씹어볼 수 있는 곡들을 청중에게 들려드리고 싶었다. 최대한 힘을 빼고 읊는 듯이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설명했다.하지만 한없이 우울한 공연은 아닐 거라고 했다. 이날 공연 2부에서는 20세기에 작곡된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선사한다. 미니멀리즘의 거장 에릭 사티의 ‘난 널 사랑해’를 비롯해 빅터 허버트의 ‘키스 미 어게인’ 등을 열창한다. 대부분 밝고 긍정적인 노래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건 결국 희망입니다. 세이킬로스 비문에 적힌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는 말처럼 우리에게도 종국에는 웃는 날이 찾아올 겁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