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설날 특집 한시> 家弟筆架(가제필가), 姜聲尉(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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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사진 설명 : 필자의 동생인 서예가 심산 강성태의 붓걸이 사진(위)과 필자의 졸시 <가제필가>를 쓴 묵적(아래).>
家弟筆架(가제필가)
姜聲尉(강성위)祖妣孤墳位土邊(조비고분위토변)
山桑一樹老爲仙(산상일수로위선)
刈草同生採根後(예초동생채근후)
終成筆架立窓前(종성필가립창전)
[주석]
* 家弟(가제) : 동생. 보통 남에게 자기 아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로 쓰인다. / 筆架(필가) : 붓걸이.
祖妣(조비) : 돌아가신 할머니를 칭하는 말. / 孤墳(고분) : 외로운 무덤. 보통 외따로 떨어져 있는 무덤을 가리킨다. / 位土(위토) : 집안의 제사나 이와 관련된 일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마련된 토지를 가리킨다. / 邊(변) : ~의 가, ~의 가장자리.
山桑(산상) : 산뽕나무. / 一樹(일수) : 한 그루의 나무, 나무 한 그루. / 老爲仙(노위선) : 늙어 신선이 되다. 곧 죽었다는 말이다.
刈草(예초) : 풀을 베다. / 同生(동생) : 동생, 아우. / 採根(채근) : 뿌리를 캐다. / 後(후) : ~한 후에.
終(종) : 마침내, 결국. / 成(성) : ~을 만들다, ~을 완성하다. / 立窓前(입창전) : 창 앞에 세우다.
[번역]
동생의 붓걸이할머니 외로운 무덤
위토 가장자리에
산뽕나무 한 그루가
늙어 신선이 되었는데
풀을 베던 동생이
그 뿌리 캔 후에
마침내 붓걸이 만들어
창 앞에 세워두었네
[시작 노트]
할머니와 함께 같은 세월을 보낸 적이 있거나 지금도 할머니와 함께 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면 어느 누군들 할머니와의 인연이 예사롭기만 할까만, 필자만큼 다소 극적인 사연이 있는 경우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듯하다.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필자의 자취방으로 오셔서 몇 달 동안 밥을 해주셨던 할머니는, 1년 반이 넘게 병석에 계시다가 재수생이었던 필자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신 바로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필자의 합격 소식을 듣고 가려고 할머니가 여러 날 삐친 것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필자와 할머니의 좀은 남다른 사연이 시작되었다.다음으로 필자는 설날 며칠 후가 되는 할머니 제삿날에, 큰댁이 있는 대구에서 큰어머니와 큰어머니 친구분의 소개로 집사람을 처음으로 만나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니 필자 입장에서 보자면 할머니가 살아계셔서나 돌아가셔서나 필자를 도와주신 것이 분명하다. 평생의 업을 정한 계기가 된 것이 대학 입학이었고, 평생의 반려를 얻은 계기가 된 것이 할머니 제삿날 소개였으니 필자가 그렇게 보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듯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서예가인 동생의 붓걸이 사진을 보고 오늘 소개하는 졸시를 즉흥으로 짓게 된 것 역시 필자에게는 그저 할머니의 뜻으로만 여겨진다. 사실, 동생이 그 뽕나무 뿌리를 캔 직후에 붓걸이가 되겠다는 말을 이미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 당시에 필자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더랬다. 필자는 악필(惡筆)이어서 붓을 잡을 일이 없으므로, 붓걸이가 요긴한 것으로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위에 게시한 붓걸이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그 사진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불현듯 시상이 떠올라 위의 시를 짓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졸시는 기실 시상이랄 것도 없는 시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은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4촌 큰형님이 집안의 위토(位土)로 쓰려고 사두신 밭의 맨 위쪽 한 뙤기에 할머니 혼자만 계시는 묘소가 있었고, 묘소가 있는 그 작은 밭 언덕에서 어느 날 거친 풀을 베던 동생이 언젠가 죽어버린 산뽕나무 뿌리를 애써 캐내게 되었다. 쇠스랑처럼 갈래가 진 뽕나무 뿌리를 캐느라 동생이 무진장 애를 먹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사실이 그대로 시의 1구와 2구, 3구가 되었다. 그러니 시상이라고 할 만한 건덕지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동생이 그 뽕나무 뿌리를 깎고 다듬고 칠까지 하여 마침내 멋진 붓걸이로 만들어 본인의 서재 창 앞에다 세워둔 것을, 또 간략하게 사실 그대로 적은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시에 유난히 애착이 가는 까닭은, 이 시를 대할 때면 언제나 할머니 생전의 모습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설 명절이라 그립지 않은 피붙이가 없지만, 필자에게 대학을 가게도 해주시고 장가도 가게 해주신 할머니가 더더욱 그리운 것은, 바로 동생의 붓걸이와 필자의 이 시가 있기 때문일 듯하다.
이제 할머니는 할머니보다 몇 년 후에 저 세상에 가신 할아버지 곁으로 가 누워계시니 더 이상 외롭지는 않으실 것이다. 필자가 동생의 붓걸이 사진과 함께 이 졸시를 시회(詩會) 멤버들의 단체 톡에 올렸더니, 이를 본 시인인 오수록 수사께서 그 임시에 즉흥으로 시 한 수를 지어 필자에게 선물로 보내주셨다. 그 따스한 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시를 여기에 걸어둔다.
다리
오수록
예로부터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 했다지
할머니 무덤가에 자란 잘생긴 뽕나무 한 그루 캐서
서예가인 동생은 붓걸이 만들어 서실에
걸어 두고 먹물 찍어 글을 쓰셨다지
시인인 형님은 동생이 만든 붓걸이를 보고
찬탄하며 즉석에서 시를 지으셨다지
할머니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향기에 담기는 쉽지 않은 법
서예가의 묵향(墨香)과 시인의 시향(詩香)이 만나 천국에 닿을 때
할머니는 단박에 알아보시고 환한 미소 지으시며
"좋다 좋다" 하시겠지
누군들 알았을까!
할머니 무덤가에 자란 뽕나무 한 그루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 될 줄을
오늘 소개한 필자의 한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압운자가 ‘邊(변)’·‘仙(선)’·‘前(전)’이다.
※ 민족의 명절 설을 맞아 이 코너를 방문한 분들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뜻한바 모든 일들이 올 굵은 실타래처럼 잘 풀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임인년 설날 아침에 태헌 강성위 재배(再拜).<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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