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대상 손보미 "어린시절 불장난 경험서 출발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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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은 단편 '불장난'…이혼가정 아이의 내적 갈등 좇은 성장소설 2009년 등단한 손보미(42) 작가는 3년 전부터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연작 소설을 써왔다. 마음속에 떠오른 한 장면에서 이야기를 확장하는 식이었다.
지난해, 어린 시절 옥상에서 동생들과 종이를 태우며 불장난을 했던 강렬한 기억이 품에 들어왔다.
이 장면을 토대로 살을 붙여나갔고 지난해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었다. 이 작품이 올해 제45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장난'으로, 최근 출간한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 커버를 장식했다.
지난 13년간 상복이 꽤 있던 손 작가는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상이 작품의 완성도를 보증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수상집이 널리 읽혀지고 잘 알려진 상이어서 엄마와 동생들이 무척 신기해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불장난'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가 부모의 이혼으로 겪는 내적 불안과 갈등을 좇아간 일인칭 시점 성장 소설이다. 아직 어른의 세상에는 닿지 못하고, 또래 집단에선 괴리감을 느끼는 10대의 심리적 파동을 요동치지 않고 침착하게 서술했다.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심리를 묘사하는 힘과 소설적 장치의 영리한 배치는 해석을 길어 올리는 재미를 준다.
손 작가는 "내적으로 많은 생각과 감정을 품었지만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원래 논리적인 전개를 중시하는데 여자아이 연작 소설은 전체 구조보다 한 장면 안에서 인물의 생각이나 감정이 고이지 않고 움직이면 좋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재혼, 이사, 전학 등 모든 사안이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졌다.
아이는 거리감을 두듯 새어머니를 '그녀'라고 지칭한다.
부모 집을 오가며 지내는 아이는 아버지 집에 손님이 방문한 날이면 잠든 척하며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내 신체 전부가 거대한 귀가 되었다고 상상했다.
'
손 작가는 "이 장면을 쓸 때, 만화 속 캐릭터처럼 큰 귀에 손발이 달린 이미지가 그려졌다"고 웃었다.
아이는 또래 집단에서도 뭔가를 엿듣는 것으로 바깥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한다.
숙직실 청소를 도맡는 친구 무리가 그곳에서 벌이는 일을 상상하며 숙직실 문에 귀를 대곤 했다.
"엿듣는 행위로 자기 욕망을 표현하던 아이는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쪽으로 옮겨가요.
'타인의 방 너머 일이 아니라, 내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란 표현이 있는데, 이 부분이 주제 의식은 아니었는데 쓰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죠."
친구들 사이에서도 외톨이가 된 아이는 어느 날 집에서 아버지가 늘 감추던 라이터를 발견해 불장난을 시작한다.
급기야 옥상에 올라가 종이를 태운다.
마치 자신을 괴롭힌 수치심과 굴욕감, 외로움까지 연소시키는 치유 의식 같다.
손 작가는 "금기시된 것에 대한 도전이나 반항"이라며 "그러나 아이는 결국 불이 꺼지듯이 이런 반항이 허상에 불과한 행위란 걸 느낀다.
우리 삶을 이루는 많은 순간이 그런 허상에 기인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아니었네' 하는 순간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
거짓을 섞었지만, 선생은 진솔한 글이라고 칭찬한다.
아이는 수상작을 낭독해보라는 선생의 요청에 원고에 쓰지 않은 진실을 즉흥적으로 채워 나간다.
손 작가는 실제 주인공처럼 불장난한 경험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는 거짓을 쓰고 상을 받으면서 세상을 속이는 데 성공하죠. 하지만 다시 진실을 얘기하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해요.
때론 거짓을, 때론 진실을 말하면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세상에 진입한 것이죠. 세상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에요.
" 손 작가는 수상 소식 뒤 고교 시절 은희경 작가의 '불임파리'를 읽고서 '얼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불임파리'는 '아내의 상자'란 제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소설 마지막에 주인공이 병원에 가려고 운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그 길을 제가 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며 "묘한 분위기, 여자의 감정이 전달되는 게 신기했다"고 떠올렸다.
"그때 '소설가들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는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거나, 남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잖아요.
저는 무척 평범하게 자랐거든요.
국문과에 갔고, 소설 창작회에도 들어갔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손 작가는 등단 이래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젊은작가상 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 '디어 랄프 로렌'과 '작은 동네' 등도 펴냈다.
'불장난'을 비롯해 '밤이 지나면' '사랑의 꿈', '해변의 피크닉' 등 여자아이 연작을 엮어 단편집을 낼 계획도 있다.
소설가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그에게 이야기를 짓는 길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소설을 쓰는 건, 제게 정말 소설(같은 일)이에요. "
/연합뉴스
지난해, 어린 시절 옥상에서 동생들과 종이를 태우며 불장난을 했던 강렬한 기억이 품에 들어왔다.
이 장면을 토대로 살을 붙여나갔고 지난해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실었다. 이 작품이 올해 제45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불장난'으로, 최근 출간한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 커버를 장식했다.
지난 13년간 상복이 꽤 있던 손 작가는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상이 작품의 완성도를 보증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낮추면서도 "수상집이 널리 읽혀지고 잘 알려진 상이어서 엄마와 동생들이 무척 신기해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불장난'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가 부모의 이혼으로 겪는 내적 불안과 갈등을 좇아간 일인칭 시점 성장 소설이다. 아직 어른의 세상에는 닿지 못하고, 또래 집단에선 괴리감을 느끼는 10대의 심리적 파동을 요동치지 않고 침착하게 서술했다.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심리를 묘사하는 힘과 소설적 장치의 영리한 배치는 해석을 길어 올리는 재미를 준다.
손 작가는 "내적으로 많은 생각과 감정을 품었지만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원래 논리적인 전개를 중시하는데 여자아이 연작 소설은 전체 구조보다 한 장면 안에서 인물의 생각이나 감정이 고이지 않고 움직이면 좋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재혼, 이사, 전학 등 모든 사안이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졌다.
아이는 거리감을 두듯 새어머니를 '그녀'라고 지칭한다.
부모 집을 오가며 지내는 아이는 아버지 집에 손님이 방문한 날이면 잠든 척하며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내 신체 전부가 거대한 귀가 되었다고 상상했다.
'
손 작가는 "이 장면을 쓸 때, 만화 속 캐릭터처럼 큰 귀에 손발이 달린 이미지가 그려졌다"고 웃었다.
아이는 또래 집단에서도 뭔가를 엿듣는 것으로 바깥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한다.
숙직실 청소를 도맡는 친구 무리가 그곳에서 벌이는 일을 상상하며 숙직실 문에 귀를 대곤 했다.
"엿듣는 행위로 자기 욕망을 표현하던 아이는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쪽으로 옮겨가요.
'타인의 방 너머 일이 아니라, 내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란 표현이 있는데, 이 부분이 주제 의식은 아니었는데 쓰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죠."
친구들 사이에서도 외톨이가 된 아이는 어느 날 집에서 아버지가 늘 감추던 라이터를 발견해 불장난을 시작한다.
급기야 옥상에 올라가 종이를 태운다.
마치 자신을 괴롭힌 수치심과 굴욕감, 외로움까지 연소시키는 치유 의식 같다.
손 작가는 "금기시된 것에 대한 도전이나 반항"이라며 "그러나 아이는 결국 불이 꺼지듯이 이런 반항이 허상에 불과한 행위란 걸 느낀다.
우리 삶을 이루는 많은 순간이 그런 허상에 기인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아니었네' 하는 순간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
거짓을 섞었지만, 선생은 진솔한 글이라고 칭찬한다.
아이는 수상작을 낭독해보라는 선생의 요청에 원고에 쓰지 않은 진실을 즉흥적으로 채워 나간다.
손 작가는 실제 주인공처럼 불장난한 경험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는 거짓을 쓰고 상을 받으면서 세상을 속이는 데 성공하죠. 하지만 다시 진실을 얘기하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해요.
때론 거짓을, 때론 진실을 말하면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세상에 진입한 것이죠. 세상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에요.
" 손 작가는 수상 소식 뒤 고교 시절 은희경 작가의 '불임파리'를 읽고서 '얼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불임파리'는 '아내의 상자'란 제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소설 마지막에 주인공이 병원에 가려고 운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그 길을 제가 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며 "묘한 분위기, 여자의 감정이 전달되는 게 신기했다"고 떠올렸다.
"그때 '소설가들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는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거나, 남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잖아요.
저는 무척 평범하게 자랐거든요.
국문과에 갔고, 소설 창작회에도 들어갔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손 작가는 등단 이래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젊은작가상 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장편 '디어 랄프 로렌'과 '작은 동네' 등도 펴냈다.
'불장난'을 비롯해 '밤이 지나면' '사랑의 꿈', '해변의 피크닉' 등 여자아이 연작을 엮어 단편집을 낼 계획도 있다.
소설가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그에게 이야기를 짓는 길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소설을 쓰는 건, 제게 정말 소설(같은 일)이에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