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뇌과학 공부하려다 내 머릿속이 뒤엉켰을 때

이 주의 과학책
‘아는 것이 힘’이란 말처럼 과학 덕분에 인류 문명은 발전했다. 다만 그 과정은 매끄럽지 않다. 앎과 앎 사이에서 불확실성은 더 커지기도 한다. 뇌과학이 대표적이다. 뇌과학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수록 우리가 진실이라 믿고 있던 것들이 흔들린다. 데이터 조작과 같은 과학계의 부정한 연구도 혼란을 보탠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학계의 모습을 그린 책들이 눈길을 끈다.

《메타버스 사피엔스》(김대식 지음, 동아시아)는 뇌과학자가 들려주는 메타버스 이야기다. 메타버스는 컴퓨터 속 가상세계다. 기술이 발전하면 영화 ‘레디 플레이 원’처럼 가상세계에서 이질감 없이 생활하게 되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는 바다. 그런데 저자는 가상현실에 앞서 지금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가 뭐냐고 묻는다. 뇌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뇌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이다. 단지 대부분의 사람이 똑같은 모습의 세상을 경험하기에 눈에 보이는 세상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뇌가 현실을 만들어낸다면 컴퓨터가 현실을 만들어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증강현실(AR)과 혼합현실(MR) 같은 기술은 이미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으며, 메타버스 시대에는 아예 인간이 현실 세계를 떠나 가상세계로 옮겨가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영화 ‘매트릭스’처럼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다정함의 과학》(켈리 하딩 지음, 더퀘스트)은 제목 그대로 ‘다정함’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다정한 사회관계가 건강과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책이 전하는 실체는 상상 이상이다. 병이 없는데도 아픈 사람, 병이 있는데도 건강한 사람의 차이도 다정함에서 기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책 속 사례에서 71세에 췌장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와 수술을 거듭하고 있는 벨라는 의지할 가족과 공동체, 취미 덕분에 밝고 젊어 보인다. 43세 데이지는 특별한 질병이 없지만 항상 지쳐 있고 여기저기 아픔을 호소한다. 외롭고 의지할 데가 없는 탓이다.

《사이언스 픽션》(스튜어트 리치 지음, 더난출판)은 세계 학계에 만연한 기준 미달의 연구와 불량 논문의 실태를 고발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새로운 연구 결과가 언론을 통해 전해진다. 눈길을 끄는 연구가 많다. 하지만 그게 다 사실일까. 저자는 오히려 픽션(소설)에 가까울지 모른다고 꼬집는다. 과학자도 직업이다. 주목받기 위해, 정년 보장(테뉴어)을 받기 위해, 연구비를 타기 위해 연구 결과를 과장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고 있다. 책은 가짜 실험, 데이터 누락, 통계 오류, 심리 조정, 사진 조작 등의 실태를 밝히며 과학계의 자정을 촉구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