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틸 여력 없다"…펀드보수 인하 경쟁에 중소형사들 '곤혹'

대형사들 펀드보수 인하 경쟁에…중소형사들 "나 죽는다"

대형 자산운용사들, 새해부터 '총보수 인하' 경쟁
삼성·미래·KB·한투운용 4개사 점유율만 90%

중소형 운용사 "보수 안 내려도 수익 적자"
"과점체계 공고히 할수록 소비자 효용 감소 우려"
이미지=한경DB
"대형사들이 보수를 낮추면 우리 같은 중소형사들은 사실상 추가적인 진출이 어렵습니다. 결국 ETF 시장도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진행되는 거죠."

자산운용사들 사이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총보수 인하 경쟁이 치열하다. 당장은 수익성보단 시장 점유율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하면서 그만큼 업계 일각에선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보수 인하 여력이 없는 중소형 운용사들로선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이유다.30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자사가 발행하는 일부 ETF의 보수를 내렸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미국S&P500레버리지'의 총보수를 연 0.58%에서 연 0.25%로 낮췄다. 국내 상장된 해외지수 레버리지 ETF 총보수 중 최저 수준이다. 삼성자산운용은 'KODEX 200ESG'와 'KODEX 헬스케어'를 비롯해 ETF 7종에 대한 보수를 낮췄다. KB자산운용도 'KBSTAR200 IT' 등 섹터 ETF 3종의 보수를 업계 최저 수준인 연 0.05%로 인하했다.

보수 인하 상품이 운용사마다 다른 이유는 저마다 다른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운용사들은 경쟁사보다 늦게 출시했거나 판매 실적이 부진한 종목을 대상으로 보수 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반면 일부 운용사들은 거래량이 많고 자금 규모가 큰 주력 종목의 보수를 인하한 경우도 있다. 보수를 낮추는 대신 상품을 많이 팔아서 수익성을 꾀하겠다는 '박리다매' 전략이다.이처럼 대형 운용사들이 새해 벽두부터 보수 인하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중소형 운용사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는 모습이다. 'KODEX' 'TIGER' 등 막강한 브랜드 로열티를 자랑하는 대형 운용사들은 자금 유입액이 많아 보수를 낮춰도 버틸 재간이 있지만 중소형 운용사는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27일 기준 삼성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총액은 29조8083억원으로 이는 ETF에 투자된 전체 금액의 약 42.6%다. 다음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35.9%)과 KB자산운용(7.8%), 한국투자신탁운용(4.6%)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들 4개사의 점유율 합은 무려 90%를 넘는다.

한 중소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ETF는 규모의 경제가 따라주지 않는 한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사업이 됐다"면서 "우리 같은 곳들은 운용규모가 작아서 보수 인하를 하지 않더라도 수익성이 미미한 상황이다. 보수를 내려도 승산이 있을지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ETF 상품을 구상하고 내놓기가 주저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밝혔다.다른 한 중형 자산운용사 퀀트운용본부 이사는 "우리나라 ETF 시장은 미국 시장의 과점체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과거 보수를 인하했지만 운용자산(AUM)이 살짝 증가한 것을 빼곤 큰 효과가 없었다"고 푸념했다. 이어 "같은 지수를 추종하게 되는 패시브 ETF의 경우 추가 진출 시 가망이 거의 없고, 액티브 ETF 역시 대형 운용사들이 기존 패시브 ETF의 후광효과로 계속해서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형 운용사발 보수 인하 경쟁이 궁극에는 ETF 시장의 다양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 혜택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무엇보다 보수가 낮아지면 펀드매니저 등에게 지급되는 인건비 등 펀드를 운영하는 비용 등이 줄어들고, 이는 상품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한 중형 자산운용사 패시브솔루션 본부장은 "대형 운용사들이 과점체계를 굳힐수록 반대급부로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는 게 제한되면서 오히려 소비자 효용이 감소할 수 있다"며 "다양성 담보를 위해서라도 무보수에 가까운 출혈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