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웠다"…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감상평 남긴 드라마는? [이호기의 금융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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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발전심의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한경DB](https://img.hankyung.com/photo/202201/01.28733654.1.jpg)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8월 31일 취임 직후 맞았던 추석 연휴 당시에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고 위원장도 연휴 기간 집에서 쉬면서 드라마 한편을 시청했는데요.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오징어게임'이었습니다. 연휴 직전인 9월 17일 공개된 오징어게임은 닷새만인 22일 미국 넷플릭스 시청 순위에서 한국 드라마 사상 첫 1위에 오르며 글로벌 흥행몰이를 막 시작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고 위원장은 지인의 추천을 받아 넷플릭스에서 1편부터 9편까지 몰아서 감상했고 연휴가 끝난 뒤 감상 평을 금융위원회 직원들과 공유하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고 위원장이 본 오징어게임은 과연 어땠을까요. 고 위원장은 먼저 "재미있다기보다 마음이 무거웠다"는 감상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오징어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가계부채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금융당국의 수장으로서 책임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고 위원장이 전체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마지막회인 9화에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이 오징어게임을 마치고 나온 뒤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들른 장면을 꼽았습니다.
미용실에 있던 TV에는 마침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는 한국은행발 뉴스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 장면이 고 위원장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것입니다. 추석연휴 때 재미삼아 보게 된 오징어게임이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든 해소해야겠다는 정책 의지를 다잡게 한 셈입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 정부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 등장한) 영희처럼 착한 얼굴로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선착순 대출 경쟁을 하게 하고 있다"고 질타했지요, 고 위원장은 그럼에도 "가계부채 관리는 강화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물러서지 않았고 이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10·26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했지요.
이처럼 고 위원장이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을 감내하면서 묵묵히 일관된 정책 기조를 펼친 결과 올 들어 부동산 가격은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고 가계대출 증가세도 지난해보다 한풀 꺾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오히려 주식과 암호화폐 등 위험자산 가격이 급락하고 시중 금리가 급등하면서 고 위원장도 규제보다 급변한 시장 안정에 좀더 무게를 싣는 모양새입니다.
고 위원장은 지난 28일 금융위 간부들과 시장 동향 및 리스크 요인 점검 회의를 열고 "최근 5거래일 동안 코스피가 크게 하락하는 등 다른 주요국 대비 낙폭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 "주요국 대비 높은 경제성장률과 1월에도 이어지고 있는 수출 호조, 기업 이익 등 우리 경제의 기초 여건이 양호한 만큼 과도한 불안 심리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지요. 고 위원장이 이번 설연휴에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향후 금융 정책 기조를 잡아나갈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그게 영화 '빅쇼트'(2015년 개봉)는 아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