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쓰면 형량 깎이나요?"…반성했다고 형량 절반된 승리[오현아의 법정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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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억울하다"더니…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물의를 일으킨 빅뱅의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를 기억하실겁니다.
2심서 모든 혐의 인정
"'진정한 반성'2차피해와
구분 위해 만들어놓은 양형인자"
그럼에도 절반이나 깎인 형량
"국민 눈높이 안맞아" 비판
승리는 2019년 2월 강남 클럽 '버닝썬'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며 1년 가까이 경찰, 검찰 조사를 받고 2020년 1월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승리는 2020년 3월 입대를 했습니다. 이때문에 민간재판이 아닌 군사재판을 받아왔습니다.최근 승리의 2심 선고가 났습니다. 27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이날 횡령 및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를 받는 승리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이는 징역 3년과 추징금 11억5690만원을 선고한 원심에 비하면 대폭 경감된 결과입니다.
이유는 '반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혐의 인정'입니다. 승리는 총 9개 혐의를 받아왔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횡령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알선 등) △상습도박 △외국환거래법 위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 △특수폭행교사 혐의 등입니다.
승리는 1심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는 전부 부인하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1심을 맡은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재판장 황민제 대령) 재판부는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로 인정하면서 "그릇된 성인식을 가지고 성 상품화를 했으며 그로 인한 피고인 이익도 누렸다"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회피하고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1심에 불복한 승리와 군 검찰 모두 항소를 하고, 사건은 고등군사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승리는 2심서 돌연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고려해 형량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반성문 내면 형량 깎일까...실제 판사 반응은?
'다만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성범죄 관련 기사를 작성하다보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전체 성범죄자 피고인 중 70.9%가 '진지한 반성', 30.3%가 '형사처벌 전력 없음'의 이유로 감형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성범죄 양형기준에는 감경요소로 '진정한 반성'이라는 아주 모호한 기준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에 범죄를 저질러 놓고 감경을 받기 위해 재판부에 계속해서 반성문을 제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이 그 예입니다. 조주빈은 재판부에 100통이 넘는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예창작과 출신이라며 반성문을 대필해주는 업체까지 있다고 합니다. 범죄 이후 여성단체나 성폭력상담소에 후원을 보내 눈속임으로 '진정한 반성'을 증명하려는 사례도 있습니다. 실제 판사의 반응을 들어봤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한 판사는 "개인적으로는 여러 장을 보낸다고 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반성은 일반 양형인자로 형을 크게 감경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위 판사는 "실제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등 2차 가해를 저지르는 피고인들이 있다"며 "이들과 혐의를 인정하는 피고인을 구분하기 위해서 양형인자로 '진정한 반성'을 넣어놓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피해자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 여전
이와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분노는 여전합니다. 직장인 조모씨 (28)는 "반성문을 쓰는 가해자가 정말 다신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반성'하는지는 의문"이라며 "또한 가해자가 적어내려간 문장들만으로 판사가 형량을 줄여주는 건 재판에서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특히 승리의 경우 9가지 혐의에 대해 전부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징역 1년6개월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범죄 이후 진정한 반성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양형인자 중에 하나에 불과한 반성이라는 요소로 형량의 절반을 깎아주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승 박사는 "가장 중심적인 피해자의 목소리가 빠져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이에 법관이 양형을 참작할 때 피해자 의견 진술을 듣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증인신문이나 공판에 직접 나서거나 서면 등으로 양형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판 편의적·가해자 중심적인 양형 조건으로 피해자는 두 번 울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 보호 관점의 양형기준 마련을 통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