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018년 평화국면 이후 최대 도발…레드라인에 '바짝'

중거리급 4년여만에 발사 재개…전문가 "ICBM 모라토리엄 파기 행동단계"
김일성·김정일 생일 계기 2∼4월 ICBM 발사 가능성…미국·중국 대응 주목
북한이 30일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2018년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이래 사실상 최대의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최근 시사한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철회에 근접한 행위로, 북한이 전략적 도발 재개 의지를 '행동'으로 보임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오전 7시 52분경 북한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쪽 동해상으로 고각으로 발사된 중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800km, 고도는 약 2천km로 탐지하였으며, 세부 제원은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다. 북한이 중거리급 이상의 탄도미사일 실험을 한 것은 2017년 11월 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한 이후 처음이다.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는 이에 앞서 2017년 9월 화성-12형이 마지막이었다.

이듬해인 2018년부터 대미·대남 대화에 나선 뒤로 중거리급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한 적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발사는 한반도 정세 시계를 확실히 '2018년 이전'으로 돌렸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전체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2017년도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은 지난 1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핵실험·ICBM 모라토리엄을 의미하는 대미 '신뢰구축조치'의 전면 재고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본격화하는 첫 행보이기도 하다. 북한은 모라토리엄 철회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비교적 저강도인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 발사를 하면서 실제 결정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발사를 통해 실제로 핵실험·ICBM 발사라는 '레드라인'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 셈이다.

태평양 괌이나 주일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급 사거리의 미사일 실험은 통상 미국을 겨냥한 고강도 도발로 여겨진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모라토리엄 파기 예고를 넘어서는, 직전의 행동 단계로 들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ICBM 발사에 나선다면 완전히 파기하는 것이지만 그 전 단계로 미국을 한번 더 강하게 압박하는 의미"라며 "확실하게 파기 쪽에 무게를 두고 의지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감행한 북한은 향후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자신들이 계획한 무력 증강 시간표를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4월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과 2월 16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에 즈음해 ICBM 발사나 ICBM을 가장한 위성 발사 등 대형 전략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해 당대회에서 천명한 국방력 발전 5대 과업에는 극초음속 미사일과 함께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천㎞ 사정권안의 타격명중률 제고 ▲수중 및 지상 고체발동기 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의 보유 등이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근 모라토리엄 철회 검토는 벼랑끝 전술이 아니라 근본적인 국면 전환을 뜻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정책기조를 천명했다.

5월 출범할 한국의 새로운 정부도 북한의 대형 도발 위기를 직접적으로 맞게 됐다.

북한의 연초 연쇄 미사일 발사에 독자제재 및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시도로 대응했던 미국이 대응 수위를 높일 경우 한반도 정세 긴장은 급격하게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미국의 이런 기조에 강경 대응으로 맞대응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본격적인 '강대강' 대치국면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제재와 더불어 대화 메시지도 꾸준히 보내왔지만, 북한이 행동 수위를 높인다면 한미일의 압박 공조를 높이는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미일 3국은 내달 중순 무렵 하와이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도 조율 중이다.

다만 대북 압박 강화가 북한의 추가 행동을 불러 한반도 정세 불안이 고조된다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오히려 적극적 대화 시도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의 이번 발사가 혈맹 중국의 '잔치'인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2월4일)이 6일 앞으로 다가와 입촌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점도 눈길을 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경쟁·갈등구도 하에서 북한의 도발 원인이 된 '합리적 우려'를 해결하라고 미국에 요구하며 연대 전선을 형성해왔다.

이런 국제적 구도가 북한의 '마이웨이' 도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27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것이야말로 한반도 교착상태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의 행위가 전략적 도발에 가까워질수록 중국과 러시아도 기존의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