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전장의 철조망을 뚫고 달린 말
입력
수정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프롤로그>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로 인간들의 삶과 운명이 비참하게 유린당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차례의 비극적 세계 대전 이후 지금까지는 3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미국 간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고조되면서 잊혔던 전쟁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영화<워 호스(War horse), 2011>에서 인간들의 무모한 전쟁에 끌려온 말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스러져 간다. 하지만 영혼이 깃든 우정을 소중히 여기던 소년은 자신의 말을 지켜내려고 애를 쓰고 그 말은 그 사랑에 화답하기 위해 포화속을 달려 소년에게 달려온다. 뛰는 게 생존인 말은 위험이 닥치면 달리듯이 우리도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전쟁의 철조망을 뚫고 헤쳐 나가야만 한다.<영화 줄거리>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의 참전용사였던 테드 내러코트는 고향인 데본에 돌아와 각박한 소작농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자갈밭을 갈 힘 좋은 말 대신 사 온 경주말을 아들 알버트(제레미 어바인 분)가 애지중지 키우며 깊은 우정을 키워간다. 하지만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지고 알버트의 애마 조이는 기마대 장교의 군마로 차출되어 곁을 떠나게 된다. 알버트는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만 영국군은 첫 전투에서 독일군에 패하면서 조이는 독일군의 대포를 운반하는 말로 차출 당하는 운명에 처한다. 시간이 흘러 알버트도 영국군에 입대하지만 전투에서 독가스에 눈을 다쳐 쓰러지게 된다. 그러던중 조이가 전쟁의 화마 속을 뚫고 자유를 향해 달리다가 조이가 입원해있는 야전병원에서 운명적 재회를 하게 된다.<관전 포인트>
A. 알버트의 아버지가 조이를 사 오게 된 배경은?
가난한 소작농이던 알버트의 아버지는 말 경매장에서 지주인 라이온스와 붙어 잘생긴 숫 망아지를 시세 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사 오게 된다. 부인은 자갈밭을 갈 튼튼한 놈 대신 들어온 말을 되돌려 주라고 하지만 알버트는 말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각별한 애정으로 보살펴 명마로 키우게 되고 둘은 깊이 교감하며 형제처럼 신뢰하게 된다.
B. 조이가 헤쳐가는 힘든 여정들은?
@험준한 자갈밭을 갈기 위해서는 굴레를 쓰야 하는데 달리는 본능에 익숙한 조이가 거부하자 알버트는 자신의 목에 직접 굴레를 쓰면서 조이가 스스로 따라 하게 만들어 결국 거친 자갈밭을 갈아 낸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기마대 말을 구하던 영국군 '니콜스 대위'는 첫눈에 조이에 사로잡혀 징집하게 된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알버트에게 조이를 끔찍이 아끼고 돌봐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독일군과의 첫 전투에 나섰던 니콜스 대위는 독일군의 매복 기관총에 죽고 조이는 독일군의 대포를 끄는 말로 혹사를 당하게 된다.
@ 조이를 소중히 다뤄주던 독일군 소년병 형제는 탈영죄로 총살당하고 프랑스 농가에 남겨진 조이는 에밀리라는 소녀와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조이는 다시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폭격을 틈타 질주본능으로 영국군 진영으로 죽을 힘을 다해 달리지만 철조망에 걸려 쓰러지고 만다.
@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 중인 중립지대에 갇힌 조이는 영국군 병사가 용기 있게 구하러 오고 독일 병사도 도우면서 같이 철조망을 제거하여 영국군 부대로 돌아오게 된다.
C. 알버트와 조이의 재회는?
입대한 알버트는 독일군과 싸우다가 독가스에 눈을 다쳐 야전병원으로 호송되게 된다. 그런데 멀리서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에 자신이 평소 조이를 부를 때 인디언 휘파람을 불자 조이가 달려오게 된다. 군의관은 다친 말을 사살하라고 상사에게 명령하지만 부축을 받아 다가온 알버트는 조이가 이마에 선명한 백색 다이아몬드와 다리에 표식을 얘기하자, 진흙에 숨겨진 부위를 씻어낸 병사들은 기적의 말을 확인하고 한 사람의 소중한 병사처럼 극진히 돌봐주게 된다.
D. 알버트와 조이의 운명은?
드디어 전쟁이 끝났지만 조이는 군법에 따라 경매에 붙여지게 된다. 하지만 동료 병사들의 모금으로 알버트도 경매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한때 조이를 극진히 돌봐주던 에밀리의 할아버지가 나타나 손녀를 기리면서 최고가를 불러 조이를 낙찰받게 된다. 하지만 조이가 알버트 곁을 떠나려 하지 않자 둘의 깊은 우정을 본 에밀리 할아버지는 조이와 함께 알버트 아버지의 참전 깃발을 건네주며 돌아간다.
E. 조이가 전쟁터를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조이가 독일군의 혼란을 틈타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달려 조이에게로 달려가는 비장한 모습(이 장면은 프랑스의 소녀 에밀리가 자신의 부모님이 전쟁 중에 죽고 난 후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용감하지 못하다고 질책하자 할아버지는 "용감한 것도 여러 가지가 있단다. 통신용 비둘기는 프랑스가 최고인데, 전쟁에서 풀려난 비둘기는 집을 향해 달려가는데 집에 가기 위해 그들은 전장을 넘어가야 해, 그 모습 상상이 되니? 고통과 공포의 전장 위를 끝없이 날아가는 거야, 앞만 보고 가야 해"라는 말에서 조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일편단심으로 달려가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에필로그>
최근 TV 드라마에서 무리하게 낙마 장면을 찍다가 말이 죽는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한 사건이 있었다. 영화 <워 호스>를 촬영한 스필버거 감독은 말들을 안전한 상황 속에서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애니마트로닉스 라는 특수효과 기법을 사용해 4~5명의 스태프가 실제 크기의 모형 말에 들어가 말을 조정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전쟁은 사람이 일으키고 많은 말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어 죽게 한 비참한 역사에서 새삼 전쟁의 무서움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실감하게 된다. 영화에서 조이가 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도층이 아닌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로 전쟁을 통해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는 슬픔을 보여준다. 소수의 잘못된 리더가 일으킨 전쟁에서 어쩔 수 없이 참전한 병사들이 적과 아군의 구별 없이 철조망에 걸린 슬픈 눈을 가진 말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던 장면에서 인류의 희망을 보게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