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현장 '군함도', 일본서 흥미성 문화콘텐츠로 소비돼"

김경리 건국대 교수 지적…"일본, 산업혁명 유산서 노동착취 은폐"
일본 정부가 조선인 징용 사실이 드러난 사도(佐渡)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가운데 2015년 세계유산이 된 또 다른 강제노동 현장인 이른바 '군함도'(하시마·端島)가 일본에서 흥미 위주의 대중문화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31일 학계에 따르면 일본문화 연구자인 김경리 건국대 교수는 학술지 '일본문화연구' 제80집에 발표한 논문에서 군함도의 최근 콘텐츠 소비 양상을 분석해 군함도가 왜곡된 역사의 대중 교육 현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군함도는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 23곳 중 한 곳이다.

일본은 서남부 규슈(九州)와 야마구치(山口) 지방에 산재한 산업유산들이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진행된 급속한 산업화를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우리 정부는 군함도를 비롯한 일부 유적이 조선인 징용 현장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반대 활동을 벌였고, 일본은 강제노동 희생자들을 위한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2020년 정보센터를 세계유산 인근이 아닌 도쿄에 설치했고, 전시 내용에 강제노동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을 자초했다.

김 교수는 일본이 군함도의 어두운 면을 일부러 외면하는 행태가 문화 콘텐츠 소비에서도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그는 "나가사키(長崎)시는 1971년 무인도가 된 군함도를 정비해 2009년부터 상륙 관광을 진행했다"며 군함도로 향하는 배에서 징용과 강제노동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가사키현 지역 캐릭터인 '간쇼군'을 내세운 군함도 콘텐츠는 대중적 재미를 부여할 뿐, 징용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며 세계사 속에서 이해돼야 할 역사적 장소가 '놀이' 체험을 하는 관광지가 됐다고 비판했다.

또 군함도에서 영화·뮤직비디오가 촬영되고,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유산 6곳의 인증 도장이 제작되면서 어두운 역사가 조명되지 않고 있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군함도가 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장소를 돌아보는 '다크 투어리즘' 현장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이라는 긍정적인 면만 부각되고 강제 노동은 철저히 은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2000년 이후 산업혁명 유적의 세계유산 등재에 적극적으로 나선 과정에 일련의 흐름이 있고, 의도적으로 노동력 착취 문제가 무시됐다고 봤다.

일본은 2007년부터 '이와미 은광과 문화경관', '도미오카 제사(製絲) 공장과 관련 유적지',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차례로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사도 광산 등재 추진도 이러한 움직임과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일본은 도미오카 제사 공장을 등재할 때 산업사회에 팽배한 노동 문제의 본질을 인지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어떠한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며 "성공이라는 긍정적 함의로 노동력 착취를 은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미오카 제사 공장과 군함도는 산업화 시기에 필수적이었던 착취된 노동의 역사를 삭제하고 일본 산업 발전을 근대화의 향수라는 허상으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