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격 급등에 1월 무역수지 적자 최대…빛바랜 수출 기록

금융위기 이후 14년만에 2개월 연속 적자…산업부 "일시적 현상"
1월 우리나라 수출이 역대 같은 달 중 최대를 기록하며 새해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수입액이 더 큰 폭으로 늘면서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2개월 연속이자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를 내 빛이 바랬다.

무역수지 적자는 원유·가스 등 수입하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무역수지 적자 흐름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 무역수지는 48억9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1월의 40억4천만달러를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무역수지는 이미 지난해 12월 5억9천만달러 적자를 내 2020년 4월 이후 20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선 바 있다. 2개월 연속 적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이다.

무역수지 적자 폭이 커진 것은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액 역시 급증한 탓이다.

지난달 원유(75억달러)·가스(64억달러)·석탄(20억5천만달러) 등 3대 에너지원의 수입액 합계는 159억5천만달러로 작년 1월보다 90억6천만달러 늘었다. 이러한 에너지 수입액 증가분은 1월 무역수지 적자 폭을 상회한다.

이들 3대 에너지원은 수입 물량도 늘었으나 수입단가가 더 가파르게 상승해 전체적인 수입액 증가를 주도했다.

다만 산업부는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 증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요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일본·프랑스·미국 등 주요국도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늘면서 동절기 들어 무역수지가 악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각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작년 12월까지 5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고 프랑스와 미국도 11월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특히 미국의 11월 적자 규모는 1천30억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다.

이들 국가 모두 3대 에너지원 수입이 적게는 두 자릿수에서 많게는 세 자릿수까지 증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에 캐나다·호주 등 자원 수출국은 에너지 수출 확대와 높은 에너지 가격에 기반해 무역수지 흑자가 커지는 추세다.

에너지 가격 급등 외에 수출 호조에 동반한 납사(+77%), 철광석(+11%), 메모리반도체(+28%) 등 중간재 수입과 산화텅스텐(+135%), 수산화리튬(+129%) 등 공급망 필수품목 수입이 확대된 것도 전체적인 수입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최근의 무역수지 적자가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위기 당시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며 경기 불안 우려 등의 해석을 경계했다.

산업부는 "과거 위기 당시에는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감소하는 가운데 적자가 발생해 수출이 장기 둔화 국면으로 진입한 것이지만, 최근의 적자는 수출이 증가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수입 증가율의 상대적 강세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밝혔다.

과거 무역적자 기간별 특징을 보면 2008년 11월과 2009년 1월은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4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주된 원인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2개월 연속으로 수출이 감소한 가운데 수입도 함께 줄어드는 불황형 적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 위기 때는 6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이어진 상황에서 국내 제조업이 셧다운(일시적 가동중지) 없이 정상 가동하면서 중간재·자본재 수입이 이뤄진 여파로 적자가 나타났다.

아울러 산업부는 "품목·지역별 수출에서도 과거 적자 시기와 달리 수출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며 선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08년 11월 3개, 2009년 1월 2개, 2020년 4월 2개에 그쳤던 수출 증가 품목 수는 작년 12월과 올해 1월 각각 13개, 14개를 기록했다.

수출 증가 지역 수도 2008년 11월은 1개였고 2009년 1월과 2020년 4월은 전무했으나 작년 12월과 올해 1월은 9개 지역에서 모두 늘었다.
지난달 수출 호조는 반도체·석유화학 등 주력 품목이 이끌고 이차전지·농수산식품 등 신성장 품목이 떠받쳤다.

15대 주요 품목 중 선박을 제외한 14개 품목이 플러스를 달성한 가운데 3대 품목인 반도체·석유화학·일반기계는 두 자릿수 성장세를 나타내며 역대 1월 중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반도체는 전년 동기 대비 24.2% 많은 108억2천만달러어치가 수출돼 9개월 연속으로 100억달러를 넘겼다.

또한 역대 1월 중 처음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석유화학은 전방산업의 수요 확대와 유가 상승에 따른 단가 증가의 영향으로 수출액이 40.0% 증가한 50억2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월간 기준 첫 50억달러 돌파이자 사상 최대치다.

일반기계는 글로벌 제조업황 개선과 인프라 투자 확대의 영향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1% 늘어난 46억1천만달러어치가 수출됐다.

단가 상승에 더해 글로벌 수요가 확대되며 수출이 큰 폭으로 성장한 석유제품(+88.4%), 철강(+50.1%)도 전체 수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유망품목 중에서는 이차전지(7억3천만달러)와 농수산식품(8억5천만달러)이 역대 1월 중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시스템반도체(+33.0%), 전기차(+53.0%), SSD(+71.7%), OLED(15.7%)도 일제히 성장세를 나타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코로나19 신규 변이 확산과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도 우리 수출이 1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며 두 자릿수 증가하는 등 견조한 펀더멘탈(경제기초)을 보여주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원자재 가격 급등, 지정학적 불안정 심화에 따른 공급망 불안 등의 리스크 요인을 고려하면 무역환경이 결코 우호적이지는 않다"면서 "최근 발생한 무역 적자가 이른 시일 내 흑자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수출지원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