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이 돼줘" 美싱크탱크 기부 늘린 구글·애플

美정부 빅테크 규제 거세지자
브루킹스·허드슨 등 연구기관 4곳
기부금 2년간 최대 4배까지 증액

"규제 강화는 中기업에만 이득"
反中 논리 확산 위해 자금 투입
미국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들이 워싱턴 정가의 주요 싱크탱크에 기부하는 자금을 대폭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빅테크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 강화가 중국에 이득이 될 뿐이라는 논리를 싱크탱크를 통해 확산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구글 아마존 메타(옛 페이스북) 애플 등 빅테크들의 공시를 분석한 결과 미국 내 주요 싱크탱크 4곳에 대한 이들 기업의 기부 금액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최소 2배에서 최대 4배까지 급증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빅테크가 주요 타깃으로 삼은 싱크탱크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신미국안보센터(CNAS) 브루킹스연구소 허드슨연구소다.2017~2018년 최소 62만5000달러(약 7억6000만원)였던 기부액은 2019~2020년엔 최소 120만달러로 두 배가량으로 뛰었다. 제한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것인 만큼 2019~2020년 기부액은 270만달러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FT는 “모든 기업이 2020~2021년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전체 액수를 집계할 순 없지만 기부금 규모는 지난해 또다시 증가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미국 정치자금 추적 단체 오픈시크리츠에 따르면 인터넷 기업들은 2016년 전체 로비 금액으로 6000만달러를 썼고 작년에 이를 9200만달러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8년 이후에는 외교정책 및 국가안보 관련 연구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대고 있다.

구체적으로 브루킹스연구소는 빅테크들로부터 2019~2020년 62만달러, 2020~2021년 100만달러를 기부받았다. CNAS 역시 같은 기간 25만달러에서 35만달러로 기부받은 자금이 늘어났다. 이들 기업은 산업별 문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민주주의와 정보통신센터’ 등에 대한 지출도 늘렸다고 FT는 전했다.FT는 “구글같이 시가총액이 1조달러를 넘는 초대형 기업에 이 정도 기부금은 작은 편”이라면서도 “빅테크들이 자신의 사업을 더 엄격하게 규제하려는 미국 의회의 초당적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워싱턴에서의 입지를 다져온 흐름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동안 전통적으로 미국 정계에 돈을 많이 쏟아부어온 석유·가스 등 에너지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을 정도”라고 했다.

빅테크들이 외교정책 연구소 등에 돈을 대는 이유는 반중(反中) 논리를 확산하기 위해서다. 이들 싱크탱크를 통해 “빅테크를 향한 규제 강화는 결국 미국의 최대 경쟁국인 중국 기업에만 이득이 될 뿐”이라는 국가안보적 관점을 내세우려고 한다는 분석이다. 반중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동의하는 소재다.

실제로 외교정책 연구소 관계자 중 일부는 최근 빅테크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해 9월 전직 국가안보 고위 관료 12명이 미국 의회에 ‘미국의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이라고 불리는 반독점 법안의 입법 절차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게 대표적이다. 당시 리온 파네타 전 국방장관, 댄 코츠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은 “의회에 계류된 반독점 법안들은 화웨이 텐센트 등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조 바이든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빅테크 로비스트들이 사적인 미팅 등에서 비슷한 주장을 확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 역시 “빅테크들이 (규제 강화 흐름에 대항하기 위한 논리로) 어떤 것이 효과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한 뒤 국가안보를 내세우는 방안이 먹힌다고 판단하고 밀고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의 로비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독점 법안은 지난달 상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했고 상원 전체회의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싱크탱크 측은 빅테크의 기부금으로 인해 자신들의 연구 방향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 앤드루 슈워츠 CSIS 홍보담당 책임자는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이 격화하고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강조되면서 우리가 전문성을 갖고 있는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