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디지털 땅'이 1750만원…메타버스서도 부동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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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빅4 거래액 5억달러 돌파…1년새 10배 '껑충'DGB금융그룹은 지난달 메타버스 플랫폼 ‘어스2’에서 대구 칠성동에 있는 대구은행 제2본점 건물 부지를 사들였다. 어스2는 가상의 지구를 10㎡ 단위의 타일로 나눠 땅을 사고파는 3차원의 가상 부동산 세계다. 2020년 11월 ‘구글 어스’를 기반으로 출시됐다.
무한한 가능성의 신대륙?
땅 사들인 부동산 개발 업체들
초호화 주택·리조트 세운 뒤 분양
DGB금융도 제2 본점 부지 매입
기술이 빚어낸 신기루?
플랫폼 우후죽순 생겨나는데다
실제 거래 많지 않아 현금화 난항
"희소성 없어…폰지 사기 같다"
이 플랫폼에서 이용자는 계좌이체나 신용카드 등을 이용해 가상 부동산을 살 수 있다. DGB금융그룹이 구매한 가상 부동산 가격은 약 100만원이다.메타버스가 유행하면서 가상 부동산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가상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부동산을 사들여 주택과 리조트를 짓고, 쇼핑몰을 세워 분양하기도 한다.
급증하는 가상 부동산 투자
1일(현지시간) 메타버스 데이터 제공업체 메타메트릭솔루션스에 따르면 더샌드박스 디센트럴랜드 크립토복셀 솜니움스페이스 등 4대 메타버스 플랫폼의 가상 부동산 판매액은 5억1000만달러(약 62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달 판매액은 8500만달러를 넘어섰다. 이 속도라면 올해 전체 가상 부동산 판매액은 작년의 두 배 수준인 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CNBC에 따르면 가상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이 미래 먹거리를 메타버스로 정하고 사명을 메타로 바꾼 이후다. 그 다음달인 작년 11월 4대 메타버스 플랫폼의 가상 부동산 판매액은 1억33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의 9배로 급증했다. 올해 1월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0배로 늘었다.손쉬운 투자 방식
어스2처럼 현실 공간을 그대로 복제한 메타버스 플랫폼도 있지만 현실 세계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꾸민 플랫폼도 많다. 가상 부동산 개발업체 리퍼블릭렐름은 지난해 메타버스 플랫폼 더샌드박스에 사상 최대인 430만달러를 투자해 별장과 보트, 제트스키 등으로 구성된 ‘판타지 아일랜드’ 100개를 개발했다. 이 중 90개의 섬은 첫날 각각 1만5000달러에 팔렸다.개인도 손쉽게 플랫폼 업체가 분양하는 땅을 매입하거나 이미 땅을 보유한 사람에게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가상 부동산은 여러 개로 쪼개져 구획(parcel) 단위로 거래된다. 결제는 현금이나 암호화폐를 사용한다. 거래 과정에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도입하기도 한다.대부분 메타버스 플랫폼들은 가상 부동산 판매량을 한정하고 있다. 땅에 희소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12개 이상의 메타버스 플랫폼이 가상 부동산을 판매 중이다. 4대 메타버스 플랫폼에는 26만8645개의 부동산이 등록돼 있다. 지난해 12월 더샌드박스에서는 96㎡ 크기의 구획 16만6464개가 각 1만2700달러 수준에 팔렸다. 같은 달 디센트럴랜드에서는 16㎡짜리 구획 9만6000개가 각 1만4440달러에 판매됐다.
“폰지 사기” 경고도
현실과 달리 가상 부동산 투자에선 입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닌 요리오 리퍼블릭렐름 공동설립자는 “가상 부동산의 가치는 누가 소유했는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이용자들은 언제든 순간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입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더샌드박스에선 미국 래퍼 스눕독이 개발을 추진 중인 지역에 웃돈이 붙어 거래된다.하지만 가상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경고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은 얼마든지 컴퓨터 코딩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상 부동산은 희소성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엔 매주 새로운 메타버스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가치가 없는 것을 사서 다른 사람에게 더 비싼 가격에 파는 사기와 같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스2의 경우 땅값이 많이 올랐지만 실제 거래는 활발히 이뤄지지 않아 현금화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에드워드 카스트로노바 인디애나대 언론학 교수는 “가상 부동산 판매는 폰지 사기와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스타트업에 메타버스는 황금 도시인 엘도라도”라며 “엘도라도를 찾아 나선 이들이 그랬듯 이들 역시 밀림 속을 헤매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